“체감경기 뚝…엄동설한이 걱정”

지난 8일 기자가 찾은 수도권 소재 한 공단. 이곳 중소기업들은 최근 불어 닥친 경제위기를 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일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데다 자금경색 조짐마저 보이면서 다가올 겨울이 걱정스럽다는 분위기다.
각종 기계에 사용되는 부속장비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A대표는 “최근 2년째 집에 월급 한푼 못 갖다 줬다. 80년대 후반부터 업체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술보증과 신용보증기금의 자금상환 압박은 물론이고 언제까지 상환하겠다는 각서까지 받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면 오히려 보증을 연장해서 사업유지를 도와줘야 할 기관들이 보증연장은 엄두도 못 내게 하고, 상환압박까지 해 화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담보는 소진됐고, 신용대출도 모두 받은 상태로 자금줄이 모두 말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한 상황”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A대표는 “정부는 이 같은 위기를 R&D투자로 극복하라며 여러 가지 지원안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최근 투자는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투자를 하려고 하겠냐”고 말했다.
금속 자재를 취급하는 한 중소기업의 대표도 보증 조기상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B 대표는 “예전 같으면 매출이 떨어지지 않으면 보증을 연장해주고 기업이 회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는데, 최근 공단의 많은 기업들이 대출을 상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은행 이자를 갚아나가는 것도 힘든 사람들에게 상환 압박은 기업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건설업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목자재를 취급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C대표는 “예년 같으면 지금쯤 내년 일거리가 몇 개는 예약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달 말까지 일을 마치면 아무 일도 없는 상태다. IMF에 공장을 반으로 줄였는데, 이달 말이 지나면 남은 공장의 반도 일반 상가로 분양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강을 취급하는 B사에는 요즘 전화 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D사장은 “경기가 좋았을 때는 4명의 직원들이 하루 종일 전화 받느라 바빴다. 9월말부터 경기가 급격히 나빠진 것 같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150여개 거래처 중 100군데 이상에서 어렵다고 말한다”며 “정부가 제대로 중소기업을 도와주려면 정말로 필요할 때 자금을 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D사장은 “몇년전 특수강 값이 뛰었을 때 기업은행에서 3억원을 대출받아 자금숨통이 트인 적이 있다”며 “중소기업이 늪에 빠지기 전에 도와주는 것이 제대로 된 지원”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중소기업 사장은 “예전에는 제조업 마진이 좋은 편이어서 몇년만 열심히 일하면 금방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원자재, 물류 등 물가가 너무 올랐지만 대기업의 압박으로 단가도 올리지 못하고 있으니 매출액이 늘어도 남는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기업이 원래 위기와 기회를 수없이 맞이한다지만 매출이 늘어 꽃 피울만하면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너무 허탈하다”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수출도 2배로 늘고 전년에 비해 매출이 30%이상 늘어났는데, 하반기 들어서 매출 타격이 너무 심해 내년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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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락·손혜정기자


-경기도 소재 한 중소기업이 일감이 줄어들자 생산라인을 정지시키고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중소기업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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