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프랑스어로는 미슐랭)은 생긴 지 123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세계 타이어 시장 1, 2위를 다투는 강한 기업이다. 2009년 미국의 저명한 소비자 평가지 ‘컨슈머 리포트’ 품질평가에서 전 부문(4개)을 석권하는가 하면, 고급 타이어시장에서 항상 10~15%의 고가전략을 고수할 정도로 브랜드력 또한 대단하다. 타이어 한 우물에서 글로벌 최고기업으로 성장한 미쉐린은 어떤 성공 DNA를 갖고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기업 중 하나로, 창업자 일가가 4대째 미쉐린을 지키고 있는데, 가족기업이지만 도그마에 빠지기보다는 과감한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치 기업 속에 ‘혁신의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1891년 하루는 경륜선수가 펑크난 타이어를 고쳐 달라고 자전거 수리공 미슐랭 형제에게 가져왔다. 당시 타이어는 바퀴와 일체식이었기 때문에 수리에 몇 시간씩 걸리기 일쑤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지만, 미쉐린 형제는 이 경륜선수와의 대화를 통해 세계 최초로 15분만에 교체가능한 착탈식 타이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결국 이들의 공기타이어를 쓴 선수들이 우승하면서 미쉐린은 일약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후 미쉐린의 ‘세계 최초 행진’은 성공일로를 타기 시작한다. 기술에 대한 미쉐린의 열정은 집요할 정도인데, 일찌기 1965년 클레르몽 페랑에 대규모의 라두(Ladoux) R&D 센터를 건립하고 업계 최고수준인 연간 6억 유로(연 매출의 4%)를 연구개발에 쏟아 붓는 등 가족경영의 장점을 살려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대규모 투자로 후발주자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두 번째로 주목할 혁신은 기술제품인 타이어에 최초로 캐릭터를 도입한 ‘하이터치 마케팅 혁신’이다. 미쉐린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다. ‘미쉐린 맨’이 바로 그것이다. 1898년 탄생했으니 100살도 넘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상업 캐릭터인 이 캐릭터는 초대 사장 앙드레 미슐랭이 동생 에두아르가 타이어를 쌓아 둔 무더기를 보고 사람을 닮았다고 한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지 캐릭터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신뢰와 위트라는 뚜렷한 성격까지 부여했다는 점이다.
창업 초창기 광고에서 이 캐릭터는 유리조각이나 못이 가득 든 와인잔을 치켜들고 ‘자, 한 잔 합시다(Nunc est bivendum)’라고 말하고 있는데, 당시 소비자들의 골칫거리였던 펑크 문제를 해결했다는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었다.
미쉐린의 세 번째 장수DNA는 제품만이 아닌 자동차 문화를 판다는 ‘業의 도메인 혁신’이다. ‘이동(mobility)을 더 안전하고 행복한 경험으로 만든다’는 사명에 부합하기 위해 창업 초기부터 타이어를 파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편리함과 즐거움’을 배가하는 여러 부대사업을 전개한 것이다. 1910년 오늘날과 같은 도로표시판을 최초로 설치한 것도 미쉐린이었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발간되기 시작한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는 프랑스 식문화의 정점을 상징하면서 지금은 별점 하나에 식당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정도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미쉐린의 성공 이면에는 어려운 고비마다 초심으로 돌아가 파괴적 혁신으로 돌파하는 ‘하이테크 회귀본능’, 딱딱한 기술을 친근한 소비자의 언어로 환원할 줄 아는 ‘하이터치 마인드’, 그리고 자신의 業에 한정되기보다 한 차원 높게 설정하는 ‘뉴 도메인 전략’의 절묘한 조합이 자리잡고 있다.

이정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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