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관행을 지키자는 사람을 보수주의자로 보고 관행을 깨자는 사람을 혁신주의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관행이란 가치관이나 의식, 태도가 반복되면서 축적된 것이다. 따라서 환경이 바뀌면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는 관행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지킬 가치가 있는 것도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정보원을 방문해서 간부들과 찍은 단체기념 사진이 한 인터넷 신문에 실리면서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다. 보안사고가 난 것이다. 국가정보기관은 정무직을 빼고 실무요원들은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똑같이 지켜진다.

우리사회가 원하는 것은 개혁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대통령이 국가정보기관을 방문해서 단체사진을 찍은 일은 없다고 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군인출신이니까 보안의식이 남달리 강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를 내 걸었던 김대중 대통령도 단체사진은 찍지 않았고 방에서 간부를 한 사람씩 옆에 세워두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정보요원들이니까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는 것까지는 허용하지만 보안에 유의한 것이다.
이런 행동은 대통령이 스스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참모들이 세계적인 관행을 파악해서 조언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 간부들과 단체사진을 찍을 때 이런 관행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었더라면 사고는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라 미숙한 참모들의 잘못인 셈이다.
게다가 인터넷 신문사에서 사진을 요청했을 때 청와대 전속사진사가 조금만 보안의식이 있었더라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청와대직원들이 한꺼번에 다 바뀐 것도 사고의 한 원인이 된 셈이다.
성급한 개혁론 자들은 모든 것을 다 바꾸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바꾸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다.

성급한 개혁은 혼란 불러
모 재벌그룹 총수가 경영혁신을 주장하면서 내건 구호도 ‘마누라 자식 빼놓고 다 바꾸자’는 것이었다. 마누라하고 자식은 빼놓고 바꿔야지 그렇지 않으면 집안뿌리가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문가들은 개혁을 할 때 무엇을 남겨야 하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치밀하게 계산한다. 이는 마치 외과의사가 수술할 때 사전점검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마추어들은 모든 것을 통째로 바꾸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대북 송금 의혹사건에 대한 특검수사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다 밝혀야 된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냥 덮어두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진짜 전문가라면 어디까지를 밝히고 어디까지를 역사의 장으로 넘길지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대북 송금과 관련된 불법행위는 철저히 밝히되 남북관계를 위한 전략적 부분은 지금 당장 파헤치는 것이 국익에 별 보탬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갑자기 성급한 개혁론 자들이 많아졌다. 여야 정치인중에도 있고 젊은 경영자에도 있고 노조지도자에도 있다.
물론 시민단체를 이끄는 사람들 중에도 있다. 그러나 물이 오염됐다고 해서 어항 속의 물을 모두 쏟아 버리면 금붕어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3분의 1씩만 갈아도 일정기간 동안 세 번이면 다 바꿀 수 있는데 빈 그릇에 금붕어 건져놓고 통째로 어항 속의 물을 버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금붕어는 비늘이 떨어지고 상처입고 심하면 사망한다.
노대통령도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말을 했다. 뛰면서 생각하면 헷갈리니까 이제는 걸으면서 생각하겠다는 언급도 있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알맞은 비율과 속도를 찾아내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지금 우리사회는 ‘금붕어 살리기’가 시급한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어항도 아니고 물도 아니고 바로 ‘금붕어’이기 때문이다.

윤은기(IBS컨설팅그룹 대표)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