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업무지시의 조건

사기 ‘평원군전(平原君傳)’에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기원전 257년,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하게 된다. 이 때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이라는 사람이 초나라에 도움을 청하러 가게 됐는데, 모수(毛遂)라는 부하가 자신이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평원군은 모수에게 말했다. “송곳은 주머니 속에 있어도 그 끝이 밖으로 드러나는 법이오. 그대가 나의 문하에 있은 지 3년이 지났다는데, 나는 그대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소” 평원군의 말에 모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주머니 속에 송곳을 넣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일찍 주머니에 넣어 주셨다면 단지 송곳의 끝만 보였겠습니까? 송곳의 자루까지 다 내보여 드렸을 것입니다.” 결국 평원군은 모수를 뽑았고, 이후 초나라 왕과의 협상에서 모수는 큰 활약을 했다. 이는 상사로서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부여하고, 지시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고사다.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함에 있어 중요한 것이 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업무지시에서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할 사항’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가장 많은 34.8%가 ‘업무지시와 관련된 정보자료의 불충분한 공유’라고 대답했다.
또 응답자의 33.6%는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 애매한 업무지시’, 32.1%는 ‘명확한 설명 없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일방적인 업무지시’라고 답했다. 업무지시에 있어서 배경설명이나 자료, 지시내용의 ‘명확성(Clear)’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명확한 업무 지시’를 가로막는 소통의 벽은 무엇일까?
첫 번째, 업무 지시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이거 무슨 말인지 알지?” 라는 식의 업무지시다. 이럴 경우에는 업무를 지시하면서 업무의 배경이나 맥락, 업무의 중요성 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직원은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하게 된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아주 재밌는 실험을 했다. 손가락 연주자가 사람들이 누구나 흔히 아는 아주 쉬운 노래의 박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손가락 연주자는 그 노래에 대한 정보를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 노래를 아주 쉽게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연주자 예상과 달리 2.5%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 노래를 알아 맞췄다고 한다. 업무지시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도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은 명확한 업무 지시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두 번째는 일방적인 상명하달식 명령이다. ‘시키는 대로 해’ 하는 식의 일방적인 업무지시다. 이는 직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명령의 틀에 갇혀 플러스 알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한다. 일방적인 업무지시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은 질문으로 직원들의 의견을 유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경분석을 이 정도로 하면 충분할까” 또는 “여기 대안에서 좀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하는 식으로 담당자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즉 업무지시자가 원하는 스펙을 명확하게 전달하되 지시를 받는 직원들이 여기에 아이디어를 더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두는 것이다. 이렇게 명확한 업무지시는 단순히 해당 업무의 완성을 넘어서 직원들의 역량과 조직을 함께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예지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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