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어느새 흘러가 버렸다. 해 바껴 더 움츠리게 하는 겨울을 이겨내고 싶었다. 경주의 겨울은 어떨까? 경주 갈 때마다 남산(금오산, 468m, 탑동, 배동, 내남면)은 뒷전이 되기 일쑤다. 꼬박 하루를 더 소요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온 산에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고 유네스코에 지정된 산. 신라시대 불적(佛蹟)을 중심으로 한 유적지(사적 제311호)다.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드는 삼릉이 시작점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삼릉쪽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배리 삼릉(사적 제219호)이라고 불리는 이 능은 신라 8대 아달라왕과 제 53대 신덕왕, 제54대 경덕왕의 무덤이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의 향긋한 내음을 맡으면서 천천히 산속으로 한걸음 발길을 옮긴다. 초입 골짜기에서, 이 한 겨울에, 때모르고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저 진달래는 분명 씨앗을 맺지 못하고 얼어버리고 말 것이다.
등산로는 제법 넓게 다듬어져 있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제19호)을 만난다. 지난 64년 동국대생들에 의해 발견된 것인데 머리가 없다. 광배가 아직도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불상의 머리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조금더 위로 올라가면 바위에 새겨진 선각마애육존불(보물 제198호)이다. 여섯 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그위로 조금더 오르면 선각여래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제159호)을 만난다. 자연석에 새겨진 여래상에 물길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바위에 줄을 새겼단다. 바위 위로 올라서니 발아래 풍경이 눈 안에 들어온다.
이어 경주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666호)을 만난다. 코가 많이 뭉그러져 있어서인지 불상의 모습보다는 민간인 모습을 더 많이 닮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8~9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약간 가파라지고 이내 상선암을 잇는 계단이다. 남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 약수에 목을 축이고 돌계단을 오르면 마애석가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제158호)이다. 커다란 바위 위에 잘 새겨진 마애불. 기도를 할 수 있는 너른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 펼쳐진 기암과 맑은 겨울 하늘과 마애불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애불은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삼릉계곡(냉골이라고 한다)에서 높이 7m로 제일 큰 불상이다.
바위 위에 새겨진 마애불이지만 머리 부분이 돌출되어 입체감이 느껴져 입체불에 가깝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한다. 마애불에서 하염없이 기도를 하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정상으로 오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매서운 바람이 불어댄다. 상사바위 밑에서 찬 도시락을 먹는데 한기가 온몸을 떨게 한다.
이내 능선을 따라가면 포석정과 용장사지(용장골)로 하산 길이 나뉘게 된다. 이번 하산 길은 용장골을 선택한다. 임도 따라 가다가 이내 암산 산길로 접어들면서 용장사(내남면 용장리) 삼층석탑(보물 제 186호)을 만나게 된다. 한때 남산에서 가장 큰 가람이 있었다는 용장사는 터로만 남아 있다.
또 이곳에는 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쓴 곳이라고 한다. 그 절터에 삼층석탑과 용장사곡석불좌상(보물 제187호)등이 있는 것. 석탑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가면 석불좌상을 만난다. 삼층석탑형 대좌 위에 목이 없는 상태로 안치되어 있다. 원형석탑의 대좌가 특이하다. 석탑 뒤쪽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그 외에도 무수한 문화유적이 골짜기에 흩어져 있다. 설잠교를 건너 계곡따라 내려오면서 잠시 우측 산길로 접어든다. 그곳에도 목이 없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어서 용장사지 약사여래좌상이라고 한다.
그렇게 남산 산행을 마친다. 아직도 찾아봐야 할 곳이 많은 남산. 금오산과 고위산(494m)에서 뻗어 내린 약 40여 개의 등성이와 골짜기가 있고 180여 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 계곡마다 유적과 전설이 있으며, 왕릉을 비롯한 많은 고분과 산정이 즐비하다. 특히 불교유적에 관심이 많은 불교도들에게는 성지 순례코스처럼 여겨지는 산이다.
절터가 130여 곳을 헤아리고 석불과 마애불이 100여체, 석탑과 폐탑이 71기에 이른다. 또 수많은 고분과 왕릉이 어우러진 골짜기. 남산은 실로 야외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남산은 또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있는 나정(사적 245호), 신라최초의 궁궐터인 창림사, 신라가 종말을 맞았던 포석정(사적 1호)이 있던 곳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개국 이래 줄곧 신라인과 호흡을 같이하며 신성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남산은 단 하루만으로 전부를 볼 수 없다.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보고 느끼기에는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다지도 알아야 할 것도 많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일까? 수없이 보고 느끼고 공부해도 끝이 없는 현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것이 아닐는지.

■여행정보

○ 탐방코스 : 배동 삼존석불입상→삼릉→냉골 석조여래좌상→마애관음보살입상→선각육존불→마애여래좌상→석조여래좌상→선각마애여래상→상선암 선각보살상→상선암 마애대좌불→금송정터와 바둑바위→상사바위와 소석불→금오산 정상→대연화대(전 삼화령)→탑기단석→용장사지 삼층석탑→마애여래좌상→삼륜대좌불→용장사터→탑재와 석등대석→용장계 절골 석조약사여래좌상→용장마을
○ 주소 및 문의전화 : 경북 경주시 탑동, 054-779-6393, 상선암:054-745-8618(경주시 배동 850)
○ 찾아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 경주IC → 시내방면으로 가다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언양방면 35번 국도 이용 → 포석정을 지나 1.5km가면 삼릉계곡 주차장
○ 추천 별미집 : 삼릉 주변에는 칼국수를 잘하는 집이 여럿 있다. 또 죽염을 생산하고 있는 왕대나무집(054-746-5987-8 내남면 상신2리)이 20여분 거리에 있다. 경주 시내에 있는 도솔마을(054-748-9232, 황남동 71-2호, 한식)는 도솔마을은 추천할만하다. 한식과 전 등 토속음식을 천연재료를 이용해 맛을 내는 집이다. 또 삼포 쌈밥집(054-741-4384), 팔우정 해장국촌, 요석정등에서 경상도식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황남빵(054-743-4896)이 있고 신경주역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 숙박정보 : 삼릉 근처에는 특별한 숙소가 없다. 보문관광단지에 리조트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온천수를 이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 문의 : 정동극장 경주문화사업부: 054-740-3800,
www.sillamiso.com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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