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발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과소비를 꼽는다. 미국의 가계저축률은 매우 낮다. 위기 발생 이후 그간의 부채를 갚기 위해 최근 다소 높아지긴 했지만 위기 이전 30년 이상 영국과 함께 세계 최저 수준이었다. 한 나라의 가계저축률이 낮아지는 원인에 대해 선진국으로 가면 그렇다고들 한다. 선진국일수록 경제성장률은 낮아지고, 고령화 비율이 높고, 복지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의 낮은 저축률은 선진국의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왜냐면 유럽 선진국들은 지난 30년간 매우 높은 저축률을 보여 왔고 또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의 성장률은 미국 보다 상대적으로 낮았고, 고령화는 훨씬 일찍 진행되었으며, 복지 혜택도 훨씬 좋았다.
미국의 저축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쉘던 게이런 교수는 미국의 독특했던 역사적 경험과 금융제도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지난 200년간 미국에서 저축이 장려된 것은 대공황 이후부터 2차 대전까지의 시기 이외에는 없다. 2차 대전을 겪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우뚝 선 미국은, 소비가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제도를 살펴보면 1980년대 들어서는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새로운 조세제도를 도입한 결과 신용카드사용과 주택담보대출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대출이 급증했고, 고리대출도 늘어났다. 주택가격 버블이 형성되었고, 미국 금융사들은 주택 담보와 소비자 신용을 늘리고 또 늘려 마침내 미국인들이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반면 유럽은 일반 서민들에게 저축을 장려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유럽의 개혁적 정치가들은 재정적으로 건전한 시민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에 중요하다는 인식이었다. 지금도 프랑스 정부는 특수저축상품 리브레(Livret)A 계좌를 대부분의 은행에서 취급하도록 해서, 수백만 명의 저소득층이나 젊은 예금자를 유치하고 있다. 독일에 가면 스파카센(Sparkassen)이라 불리는 저축은행이 곳곳에 있다. 저축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은행으로 젊은이들에게는 수수료가 면제되는 계좌를 발급한다. 유럽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소비자금융이나 주택담보대출 등을 통해 국민이 과도한 채무를 지는 일을 제한하는 정책적 포지션을 유지한다.
한때 세계최고의 ‘저축왕’으로 불렸던 한국의 2010년 가계저축률은 OECD 평균의 5분의 2 수준인 2.8%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 1990년 이후 하락 속도 역시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 1987년, 24.7%로 세계최고의 가계저축률을 기록했고, 이후 13년간 세계 1위를 지켰지만 2000년, 9.3%로 떨어지며 1위 자리를 내주었고, 2001년에는 처음으로 OECD 평균을 하회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동안 세계최고의 가계저축률에서 OECD 최하위 수준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엄청난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와 신용카드를 사용한 결과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 되어도 좋을까? 한나라 경제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은 가계의 건전한 재정상태에 근간을 두는 것이라 생각할 때 소비와 저축의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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