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이후 무역흑자국과 적자국의 경제모델이 서로 바뀌어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독일이나 중국, 한국 등 무역흑자국은 이전의 수출 제조업 중심 경제성장을 지양하고 내수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뀌어야하고, 반대로 서비스 중심 경제로 무역적자국인 미국이나 영국은 제조업과 수출경쟁력을 강화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한 나라의 경제성장 모델을 바꾸는 것이 쉽게 가능한 일일까? 최근 독일을 보면 오히려 위기 이전에 비해 수출 제조업을 더욱 강화시켜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뛰어난 경제성과를 보이고 있다. 한때 ‘유럽의 병자’ 소리까지 들었던 독일의 2010년 경제성장률은 3.6%로 EU 평균인 1.2%를 훨씬 웃돌았다. 더욱 놀라운 건 실업률이다. 7% 전후로 통독이후 가장 낮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OECD 주요국 중에서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실업률이 낮아진 것은 독일이 유일하다.
이러한 경제성과를 배경으로 국제컨설팅 회사인 멕킨지는 ‘위기 이후: 독일 경제모델 조정’이란 보고서를 통해 과연 독일이 수출 제조업 중심 경제모델을 내수 서비스업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독일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4%로 G7국가 중 가장 높아, 12%인 프랑스, 13%인 미국의 두 배나 되는데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수출의 GDP 성장 기여도 역시 평균 59%나 된다는 것이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욱 잘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었다. 참고로 한국은 제조업 비중 27.5%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은 약 30%이다.
금융위기 이후 독일이 재부상하고 또 제조업에 강력한 기반을 둔 중국의 급격한 성장을 보면서 2011년 7월 초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강력한 제조업 기반이 없는 경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가설을 놓고 토론과 여론 조사를 펼쳤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찬성의견으로 토론에 나섰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보그와티 교수는 반대의견이었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스위스나 싱가포르 같이 서비스중심 국가로 보이는 나라들도 실상은 스위스나 중국 본토의 강력한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선진국에서 상대적으로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 보이는 것도 제조업의 경우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가에 따라 상품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탈산업화 시도는 수출제조업의 비중을 약화시켜 결국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할 뿐이라는 게 장 교수 주장의 요지였다.
반면 보그와티 교수는 아담 스미스 이래 경제학자들이 제조업을 숭배해 왔지만 사실 기술진보는 제조업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소매업이야말로 가장 혁신적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코노미스트’ 여론 조사의 결과는 찬성 76% 반대 24%였다. 제조업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독일경제를 둘러싼 고민, 한국경제를 둘러싼 고민과 정말 판박이처럼 비슷한 상황이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