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의 초저금리 대출(1조 유로)과 1,300억 유로의 2차 그리스 구제금융 지원이 이뤄지면서 유럽 재정위기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양상이다. 하지만 최악의 위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이베리아반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특히 스페인경제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년 전부터 유로존의 4위 경제대국인 스페인이 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
금년 초만 하더라도 스페인보다 이탈리아에 대한 위기감이 컸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몬티 내각이 출범하면서 긴축과 구조개혁을 추진해 시장의 신뢰를 어느 정도 얻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현재 두 나라 상황이 바뀌었다. 최근의 국채금리 추이를 보면, 이탈리아는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반면 스페인의 금리는 상승하고 있다. 그 결과 3월 28일 현재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금리(5.33%)가 이탈리아(5.1%)를 상회하고 있다. 지난 3월 6일에 스페인의 국채금리가 이탈리아 금리를 역전한 이래 그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스페인의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음을 뜻한다.
EU집행위는 지난 2월에 발표한 춘계 경제전망에서, 스페인경제가 2012년 -1.0% 성장한 후, 2013년에는 1.4%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하지만, 민간연구소들은 스페인경제를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인사이트는 스페인경제가 2012년 -1.5% 성장에 이어 2013년에도 -0.3%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대표적 비관론자인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2012년 -2.1%에 이어 2013년에도 -1.6%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비관론의 근거는 스페인경제가 ‘경기침체→재정적자 확대→정부부채 증가→추가 긴축→경기침체 심화’라는 ‘긴축의 덫’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경제를 이끌던 부동산 건설경기는 최대 호황기였던 2005년에 비해 5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부동산 버블 붕괴의 후유증으로 민간소비가 크게 부진하다. 민간소비 부진에는 고용 악화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스페인의 고용사정은 사상 최악으로 2012년 1월 현재 실업률은 OECD 최고인 23.3%를 기록 중이며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50%에 이른다.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와 실업수당 지출 증가 등으로 건실했던 스페인의 정부재정이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스페인의 2011년 재정적자는 GDP대비 8.5%로 목표치(6%)를 크게 웃돌았다. 스페인정부는 2012년 재정적자 목표를 EU집행위에 약속한 GDP 대비 4.4%보다 높은 5.8%로 수정했다. 이는 경제침체로 스페인의 정부재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스페인정부는 국민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긴축을 예고하고 있어 경제침체의 장기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2011년 3/4분기 현재 스페인의 정부부채는 GDP대비 66%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양호하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인한 내상(실물경제 침체)이 워낙 심해 정부부채의 빠른 증가가 예상된다.
스페인의 ‘제2 그리스’ 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 있다. 경제침체와 은행부실 등이 불안요인이지만, 스페인의 재정여력이 충분하고 EU차원의 방화벽이 구축되면 위기극복이 가능하다는 낙관적 시각이 아직은 우세하다.
하지만 스페인정부가 긴축과 구조개혁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경제침체가 심화되거나 예상치 못한 지방정부의 추가 재정부실이 발생할 경우 ‘제2의 그리스’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스페인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면 유로존은 그리스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스페인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스페인의 ‘제2의 그리스’ 가능성을 계속 예의주시해야 한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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