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사례로 배우는 중기마케팅-난타]철저한 기획·트렌드 분석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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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사례로 배우는 중기마케팅-난타]철저한 기획·트렌드 분석 돋보여
  • 박완신
  • 호수 0
  • 승인 2003.07.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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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신문은 중소기업에게 새로운 마케팅 아이디어 제공을 위해 사례로 배우는 마케팅을 신설 격주로 게재합니다. 급변하는 고객니즈와 시장 패턴에 기업의 코드를 맞추는 각 분야의 성공사례를 통해 기업경쟁력 강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

‘2002 한일 월드컵 기념 서울의 10대 볼거리’에 선정되고 3,800여회 공연에 150만명의 관람기록을 돌파한 ‘난타’.
지난 97년 초연 후 공연 때마다 평균 객석 점유율 110%의 경이로운 기록을 세워온 ‘난타’는 IMF 이후 공연예술계의 총체적인 위축에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 대형수입 뮤지컬 작품들을 누르고 최고의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 공연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마케팅 전략을 세운 ‘난타’는 전용관 건립과 함께 외국 관광객 유치에 전력한 결과 해외인지도 상승을 통해 350억원의 브랜드가치를 갖게 됐다. 단순한 공연 차원을 벗어난 ‘난타’는 한국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했고 전세계 16개국 83개 도시에서 공연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성공비결1-철저한 기획으로 승부
‘난타’의 산파역을 맡은 PCM프러덕션 송승환 대표는 “6년을 이어온 난타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며 “전용극장 3년 운영의 노하우를 발판으로 더욱 탄탄해진 드라마와 코미디로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설 것”이라고 밝혔다.
‘난타’가 처음 기획될 당시인 90년대 중반의 국내 공연시장은 지나친 작가주의 경향을 띠고 있었다. 소수의 예술성을 지향하는 엘리트주의 연극과 벗기기식 연극으로 나눠진 시장구조때문에 ‘난타’는 철저히 관객이 즐거워해야 한다는 커다란 명제에서 출발해 새로운 시장만들기에 나섰다.
또 국내 연극작품이 해외진출을 시도할 경우 가장 큰 애로사항은 언어전달.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넌 버벌(non-verbal) 퍼포먼스’로 전세계적으로 태동기에 접어든 장르에 과감한 도전장을 낸 것이다. 사물놀이 리듬을 바탕으로 주방에서 벌어지는 코미디로 방향을 잡은 ‘난타’는 대중 누구에게나 다가설 수 있는 ‘즐거운 공연’ 쪽으로 무게의 추가 기울었다.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극적 요소를 찾던 기획팀은 음식문화를 상징하는 주방에 한국적 리듬을 간직한 사물놀이와 코미디를 주요 뼈대로 잡고 빠른 비트의 음악과 화려한 조명 등을 세련된 형태로 가다듬기 시작했다.
트렌드가 소비를 좌우하는 시장원리 속에서 철저히 기획된 ‘난타’지만 관객의 반응을 꾸준히 피드백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에 신경을 썼다.
미국 브로드웨이 출신 전문 ‘쇼’ 디렉터만 3명이 거쳐갔고 새롭고 재미있는 극적 요소를 첨가하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

■성공비결2-나의 약점을 숨기지 마라
해외시장을 처음부터 염두에 둔 ‘난타’였지만 경험이 부족했던 PCM 프러덕션 송승환 사장은 “초기엔 정말 단순 무식한 방법을 썼다”고 털어놓는다. ‘난타’ 공연실황을 담은 비디오를 직접 들고 공연 프로모터들을 찾아다녔지만 높은 벽을 뚫을 수 없었다.
PCM측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국제 공연마케팅 분야의 외국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미국 ‘브로드웨이 아시아’사를 접촉했고 98년 동숭아트홀에서 개최된 난타 공연에 공연예술비즈니스계의 거물인 시몬 사장이 직접 방문, ‘난타’의 국제화가 시작됐다.
이 때부터 해외진출에 관한 모든 일은 브로드웨이 아시아사 측이 전담했고 99년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해 공연 내내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해외 공연이 줄줄이 잡힌 2000년 한 해 동안 ‘난타’는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아일랜드 등 10여개 국가를 순회했고 99년 일본 공연은 아사히신문, NHK TV 등 최고의 언론매체가 주최 파트너로 선정될 정도로 브로드웨이 아시아의 탁월한 능력이 발휘됐다.

■성공비결3-시대변화의 흐름을 읽어라
‘난타’는 표적시장으로 우선 20·30대 여대생 및 직장인 등 공연매니아 층을 선정하고 홍보팀, 제작팀이 모두 투입됐다.
그 결과 개막 1주일 동안은 초대권으로 버티며 늘어나는 빈 좌석에 고민해야 했다.
90년대 초부터 보편화된 PC통신내의 동아리 및 소모임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던 점에 착안한 PCM은 PC통신 모임을 타겟으로 잡고 온라인 마케팅에 온 힘을 기울였다.
‘난타’가 준비한 또 하나의 카드는 전용극장. 대부분의 공연이 한 달을 넘기지 못하는 국내현실에 비해 브로드웨이에서는 완성도 있는 뮤지컬 작품이라면 몇 년 몇십년씩 한 곳 전용관에서 공연하는 게 상식이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PCM측은 한국 최초의 뮤지컬 전용관 건립에 나섰다.
철저히 외국관광객을 주 고객층으로 정한 전용극장은 2000년 7월 1일 마침내 문을 열었다. 국내 방문 외국 관광객중 3%인 15만명만 유치해도 난타 전용관을 일년 내내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린 것.
국내여행사 16곳과 일본, 미국 등 외국 여행사 6개를 포함 모두 22곳 여행사와 제휴해 ‘난타’ 공연장을 관광코스로 상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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