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 없이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혼자 먹는 저녁식사가 어쩐지 단촐하고 쓸쓸해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TV에서는 다큐멘터리 동행3일이 방송되고 있었다. 그 날의 주제는 <남도학숙>이었다. 전라남도에서 서울로 대학교를 진학한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 <남도학숙>. TV속 <남도학숙> 속에는 새로운 3월을 맞이하는 대학생들의 풋풋함이 넘쳐나고 있었다.
선배들에게 한달간 밥을 얻어먹을거라며 텅텅 빈 지갑을 보여주고, 해외봉사도 가고 싶고 미국으로 유학도 가고 싶다며 당찬 미래를 밝히는 풋풋한 신입생들부터,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며 거울 앞에서 밝게 미소 짓는 연습을 하는 여대생도 있었다.
보람있게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는 TV 속 눈부신 대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저 때의 나는 어땠나’라는 감상에 잠기게 되었다.
부산에서만 19년을 자라왔던 내게 서울에서 시작하는 대학생활은 낯설면서도 특별했다. 그 해 겨울 첫 눈을 서울에서 보았던 것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 아무도 나에게 간섭하지 않는 자유를 실컷 만끽했다. 학교 앞 잔디밭에서 기타 치며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대학생의 로망이었던 미팅에도 종종 얼굴을 내밀었다. 풋풋한 첫사랑을 겪었으며, 쓰디쓴 이별도 함께 겪어야만 했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선택하고, 내가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았고, 좌충우돌도 많이 겪었다. 처음으로 훌쩍 떠난 혼자만의 도보여행이 기억난다. 물집으로 뒤덮힌 발이 아파 고생했던 기억, 시멘트 바닦에서 무작정 쓰러져 낮잠을 잤던 기억. 20살의 치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모든 것들.
누군가 다시 그때도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마도 고개를 저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돌아간다면, 분명 지금보다 잘해내는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실수도 훨씬 적고, 시행착오도 훨씬 적고, 맘고생도 훨씬 적게 하겠지. 더 노련하게 사람을 대할 것이고, 더 능숙하게 사람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20살의 유치함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20살이라 가능했던 풋풋함 가득한 추억의 색이 계속해서 총천연색으로 반짝반짝 빛나길 바란다.
그리고 24살의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매일매일 만들어내는 시간들이 내겐 무척이나 소중하다. 나의 지금(present)은 감사한 선물(present)이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튼튼한 뿌리와 밑동을 만들어내는 나무들처럼, 내가 순간순간 치열하게 살아온 지나온 나날들이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내는 밑거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믿는다.
서울에서 맞이하는 5번째 봄이 왔다. 봄은 매해 찾아오지만, 단 한 순간도 똑 같은 봄이었던 적은 없었다. 달력에서 새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쯤에야 진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기분이 든다. 올 한해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매 순간이 만족스러울 수 없을테고, 기쁜 날이 있는 만큼 슬픈 날도 있을 것이다. 올 한해도 생동감 넘치게, 매일을 감사하며 살고 싶다.

강수정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4학년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