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2분기 中企대출 축소 움직임 보여”

대내외 경기둔화에 따른 신용위험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권의 중소기업 돈줄 죄기가 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일 발표한 1/4분기 금융기관 대출행태서베이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부실위험이 작고 은행들도 마땅한 자금운용처 발굴이 어려워 대기업 중심의 영업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지난해 사상최대의 유보율을 기록한데 이어 평균 10%대의 현금보유비율을 보여 자금 신규수요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반면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업황부진으로 현금확보가 여의치 못한 가운데 고유가 등 영업여건 악화로 자금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중소기업의 자금경색과 유동성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만성적인 중소기업 자금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

#1수도권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K사장(41)은 10여년간 해오던 사업을 접었다.
인근 국가산업공단에 소재한 자동차부품, 휴대폰 하청업체에서 일감을 받던 K사장은 매출이 줄어들어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K사장은 “지난해 여름 이후 하루 적자만 수백만원에 달했다”며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커지니 달리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기계부품을 생산하는 M사장(55)은 최근들어 고민이 커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거래하는 대기업으로부터 받는 납품단가는 제자리걸음하기 때문이다. M사장은 적자를 감수하고 기계를 24시간 풀가동 시키고 있다. 매출이라도 늘려 이를 토대로 대출 받아 운영자금을 마련해볼 생각이다.
M사장은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중소기업들의 자금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공장부지는 이미 담보로 잡혀있어 추가 자금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유동성 대·중기 양극화 심화=지난 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은행들은 2분기 가계와 중소기업 대출을 축소할 계획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신용위험 상승으로 리스크 관리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가계대출 역시 정부의 가계부채종합대책과 채무상환능력 저하 등으로 신중한 모습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예금은행 기업대출 통계를 보면 지난 1월말 현재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총 442조9000억원. 전년 같은 달보다 3.2% 늘었지만 중소기업 자금 여력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같은기간 대기업 대출 잔액은 120조1천억원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26.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의 8.3배에 달한다.
반면 자금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중소기업과 가계의 자금난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업황부진으로 현금 확보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며, 가계는 아파트 분양자금 마련과 생계형 자금을 중심으로 수요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과 가계의 자금수요가 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비해 지난해 국내 대기업의 잉여자금 내부유보율은 1200%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자산총액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72개사의 잉여자금 내부유보율은 평균 1219.45%로 전년도 1122.91%보다 96.54%p 올랐다.
10대 그룹 유보율은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04년 말 600%를 돌파한데 이어 2007년 700%, 2008년 900%, 2009년에는 1000%를 넘어섰다.
직접금융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 직접금융 방식으로 조달한 자금은 54조5천75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보다 39.1% 증가한 금액이다.
이 가운데 시가총액 100위 안에 드는 대기업들이 조달한 자금은 38조8천636억원으로 전년보다 45.9% 늘어났다.
시가총액 101∼300위 기업들도 전년보다 43.9% 증가한 13조8천625억원을 조달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가총액 300위권 밖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1조8천493억원을 조달하는 데 그쳤다. 이는 전년보다 37.9% 감소한 금액이다.
□대·中企간 순이익 격차도 심화=자금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순이익 분야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상장사 중 근로자 300인 미만, 자본금 80억원 이하 중소기업 527곳의 순이익은 8천385억원으로 삼성전자(4조8천195억원)의 6분의 1 수준인 17.4%에 그쳤다.
매출액에서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는 컸다.
지난해 상반기 중소 상장사 527곳의 매출액은 17조8천억원으로 삼성전자(55조7천억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자금상황은 지방 중소기업 일수록 더 열악하다. 지난해 말 기준 어음부도율(전자결제 조정후)을 보면 서울은 0.01%로 전월과 같으나, 지방은 0.03%로 0.01%p 상승했다. 부도업체수(법인+개인사업자)도 전월(97개)에 비해 21개 증가한 118개를 기록했으며 지역별로는 서울이 5개, 지방은 16개 증가했다. 이같은 결과는 지방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올해도 경제전망이 밝지 못해 이같은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대책은 없나=중소기업계는 최근 국내경제상황이 금융위기 초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나쁜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 단위에서 자금 흐름이 막히면서, 이들 규모의 법인 설립이 줄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대한 효과적 지원이 없는 한 대기업과 영세법인만 늘어나는 기형구조가 고착화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고질적인 대출관행에 대한 개선 목소리도 여전하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사장은 “기업을 둘러싼 경영상황이 나빠지고 있지만 금융권은 예대마진, 수수료 등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 대출관행 등 중소기업에 대한 서비스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A사장은 “비가 오면 저지대에서부터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위기상황에선 서민·중소기업과 같은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금융권의 담보위주 대출행태 시정을 요구했다.
금융권과 중소기업과의 신뢰성 향상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용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정부는 중소기업의 경영과 금융에 대한 실태조사를 빨리 실시해 우량기업, 잠재 부실기업, 한계기업 등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선제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의 K지점장은 “중소기업들은 금융기관이 자신들의 재무정보를 불신하고 있으며, 미래의 기술력과 사업성 보다는 과거 재무정보에만 매달려 있다고 불평을 터뜨린다”며 “이에 비해 금융기관들은 중소기업들의 회계는 주먹구구식이고 투명하지 못하며 사업전망도 불확실하다고 믿어 담보나 보증위주의 단기여신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K지점장은 “뿌리 깊은 불신과 시각적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금융기관부터 중소기업에 특화된 전문적 기업평가시스템을 확충·보완해야 한다”며 “중소기업도 스스로 신용을 높이는 일에 열성을 보이고 자사의 단점까지도 포함하는 기업정보 공개와 선택과 집중에 따른 비핵심 자산을 과감히 처분하는 등 재무건전화에도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책자금 확대 요청주장도 있다.
은행이 건전성 유지를 위해 대출 부실화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중소기업 보증확대 등 정책적 노력을 통해 자금난을 덜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은행도 무조건 돈줄을 죄기보다 건실한 중소기업이 자금난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중소기업 자금난 얼마나 심각한가]

中企 33% 자금사정 곤란…판매부진 원인 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말 조사한 ‘중소기업 금융이용 및 애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업체의 33%가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응답했다.
반면, 원활하다는 대답은 17.4%에 그쳤다. 자금사정이 곤란한 원인으로는 판매부진이 29.7%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는 제조원가 상승(25.8%), 금융비용 부담증가(10.6%) 등의 순이었다.
올해 자금수요에 대해서는 증가할 것이라는 응답이 37.3%에 달했으며 주요 사용처는 원부자재 구입(35.,5%)이 가장 많았다.
특히, 조달자금의 상당분을 투자 보다 운전자금 용도로 사용할 계획으로 조사된 점도 특징이다.
금융기관 차입 시 대출조건으로는 부동산 담보가 35.6%로 가장 많았고 순수신용(25.5%), 신용보증서(18.5%)의 순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적용받는 평균 차입금리는 담보대출이 6%, 신용대출 6.4%, 어음할인 6.6%, 무역금융 5.6%로 조사됐다.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 시 애로사항에 대해서는 28.6%가 높은 대출금리를 꼽았으며 신용보증서 위주대출(12.7%), 까다로운 대출심사(12.6%) 순으로 조사됐다. 부산과 신용보증서 위주의 담보대출 관행에 따른 애로사항은 24%로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해 은행의 위험회피 경향이 여전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결과는 비슷한 시기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자금사정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 기업이 전체의 50%에 달했으며 중소기업의 자금난 완화를 위한 정책과제로 가장 많은 기업이 '정책자금 확대'(34.7%)를 꼽았다.
지난 1~2월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접수된 정책 자금 신청도 4천461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2천992건)보다 50% 가까이 증가했다. 신청 자금도 1조5천400억원에서 2조1천300억원으로 늘어났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그대로 반영됐다.

- 시중은행의 2분기 중소기업 대출 축소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대기업 유보율이 지난해말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기업자금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나 중소기업의 자금사정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금고에서 직원이 시중은행으로 방출될 현금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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