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일본학 - (너의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 / 기타노 다케시

나만 뒤쳐진다고 느낄 때 마음을 위로해주는 책들은 “당신도 소중한 사람, 잘 할 수 있어요”라고 속삭인다. 복지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이즈음 정치인들 역시 한 목소리로 “소외받는 이가 없도록 다 끌어안고 가겠다”고 공약한다. 그러나 이 말을 100% 거짓말이라고 조롱하고 냉소하는 이가 있다. 코미디언으로 출발하여 배우, 감독, 작가, 화가, 교수로 영역을 넓혀온 일본의 울트라 마초 천재 기타노 다케시(北野武)가 그이다.
“어린이는 훌륭하다. 어린아이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요즘 어른들은 그런 한심한 소리를 한다. 어린이들이 모두 훌륭한 건 아니지 않은가. 잔혹한 표현이지만, 멍청이는 멍청이다. 야구를 아무리 좋아해도 못하는 놈은 연습을 해도 못한다. 그런 걸 다 알면서, 노력만 하면 누구나 일류가 될 수 있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을 예사로 한다. 진실은 그와 다르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 겨우 일류가 될 수 있을까 말까 한 게 현실이다. 연습을 한다고 모두 이치로 선수(일본의 유명 야구선수)처럼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全思考) 중) 뭐 이 정도는 약과다.
세계 영화계의 거장으로 대접받는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받아 왔을 때 교통사고로 일그러진 얼굴에 특유의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가족이란 보는 사람만 없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일갈했다.
워낙 유명한 독설가지만 정곡을 찌르는 독설에 명문장가다보니 집필 의뢰도 많고 평가도 좋다.
기타노 다게시는 일련의 책들을 통해 현대 일본의 유약함을 질타하고 있다. ‘한일 월드컵은 한국에만 유리했다’, ‘김정철이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들어와도 모르고 있다니’‘물질 풍요가 가져다준 문제점’, 정보의 노예를 양산하는 IT와 휴대폰 등을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꼬집는다. 빈정대며 지적하는 것에 그쳤다면 그의 책을 전부 찾아 읽을 생각이 나지 않겠지만, 고전과 관련 서적으로 공부한 후 만담가 출신의 유머 감각으로, 그가 아니면 감히 생각하기도 어려운 기발한 대책까지 제시한다.
국내에도 그의 책이 여러 권 번역되어 있는데, 그 중 현재 일본의 침체를 진단할 수 있는 책이 <위험한 일본학>이다. 2001년에 출간된 것을 감안하면 그의 예견을 예능인의 말 장난이라고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는 무게가 느껴진다.
“일도 잘하면서 가정에도 충실한 아버지란 있을 수 없다”라고 단언하고는 다음과 같은 진단과 대책을 내놓는다.
“사회와 가정 사이에 아버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주보는 건 사회뿐이고 가정은 ‘덤’이다. 사회와 가정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창’처럼 가정 안에 사회의 공기를 불어넣어주는 존재다. 자식은 아버지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 아버지가 맞서고 있는 사회를 보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지금의 아버지들은 그저 무의미하게 가정만 마주보고, 창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사회 쪽으로 열린 문을 자신이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지금 이대로라면 산소가 결핍된 가정 내에서 사건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어설프게 가정에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두 ‘아버지 부재’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
국가와 개인 측면에서 진단을 마친 다케시의 결론은? “더 이상 이 나라에 밝은 미래가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제가 총리가 되면, 국회에서 일본의 해산을 선언하려 합니다. 마치 중의원해산처럼 ‘만세!’를 부르며 하는 겁니다.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자세가 지금의 일본에 가장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국민들은 난민 자격으로 외국으로 도망가게 할 작정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저를 뽑아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옥선희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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