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은 광양읍내부터다. 생각보다 작은 도심을 약간 비껴난, 시골 마을에서 매천 황현 선생의 흔적을 우선 찾는다. 사방팔방 봄 기운이 완연하다. 매화꽃이 만발하고 붉디 붉은 동백꽃, 쑥, 냉이, 꽃다지, 구슬붕이 등 들나물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같은 하늘 밑임에도 광양 땅은 일찍이도 봄의 포문을 연다. 따사로운 봄 햇살 한줌 만큼이나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정겨움이 가득하다. ‘오길 참 잘했어’

*한말의 순국지사 매천 황현 선생을 광양읍에서 만나다

공설운동장을 지나쳐 작은 시골마을 안에서 매천 선생의 생가를 만난다. 마당이 넓지 않은, 크지 않은 초가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매천헌’이라는 현판이 걸린 안채, 사랑채, 우물이 있고 특이점을 굳이 찾으라면 안채 뒤켠에 ‘매천정’이 있다는 정도다. 마루 안쪽 벽면에 선생의 영정이 걸려 있다. 선비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는, 강직해 보이는 초상화를 보면서 툇마루에 걸터 앉아 황현 매천 선생을 생각한다.
매천은 철종 6년(1855) 12월 11일 이곳(당시 서석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시묵, 어머니 풍천 노씨(豊川 盧氏)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남이다. 부친이 한양에서 조부를 모시고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 그의 조부는 순천, 광양등지에서 ‘거적위업(居積爲業, 재산을 모으기 위한 상업)’으로 상당한 부를 이룩했다고 한다. 마을 땅 대부분이 이 집의 재산 소유였을 정도였다지만, 그런 짐작을 하기에는 생가는 빈약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천권의 책을 구입해 줄 정도로 학구열이 높았고 10살 때부터 아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구례의 왕석보 스승 밑에서 수학하게 한다. 매천 또한 14세 때 향시를 치를 정도로 신동소리를 들었다. 17세때는 구례군 마산면 상리의 해주 오씨인 오현주의 딸과 결혼했다.
24세 때, 서울로 상경해 강위, 이건창, 김태영과 교류하면서 29세(고종 20년, 1883)때 보거과(保擧科)에 응시해 초시 초장에 첫째로 뽑혔으나 시골출신이라는 것을 구실삼아 시험관 한장석은 선생을 차점자로 낮춰버렸다. 예나지금이나 지방차별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선생은 조정의 부패를 통감하면서 모든 관직의 응시를 포기해버리고 귀향한다.

*동백꽃 흐드러지게 핀 옥룡사지에는 도선국사가 참선하고 있는 듯

길을 따라 도선국사가 거했다는 옥룡면으로 장소를 옮긴다. 백계산(505m) 자락에 옥룡사지가 있다. 주차장에부터 걸어가는 길목(해발 403m)에서 대규모(약 2100여 평) 동백군락지(도지정 기념물 12호)를 지나치게 된다. 온 산을 동백나무가 에둘러 감싸고 있다. 신라 경문왕 4년(864),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창건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라 보호수를 심었다는 전설이 흐른다.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충하려고 꾸몄으며, 제자들의 심신수련을 위해 차밭을 일궜다는 일화도 전하다. 이 동백군락지는 ‘아름다운 숲’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찾는 이 많지 않은 그곳에 피어난 동백꽃은 따사로운 봄날과 잘도 어울린다. 동백숲길에 폭 빠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금 오르면 옥룡사지(사적 제407호)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터는 큰 연못이었는데 이 연못에 9마리의 용이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에 도선국사가 용을 몰아냈는데 유독 백룡만이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로 용의 눈을 멀게하고 연못의 물을 끓게 하여 쫓아낸 뒤 숯으로 절터를 닦아 세웠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이 옥룡사에서 30여년 동안 홀로 앉아 말을 잊고(宴坐忘言) 지내다 입적했다.

*망덕포구에 남아 있는 윤동주 시인의 애련한 흔적

길을 나서 섬진강 물줄기가 바닷물과 조우하는 망덕포구를 찾는다. 배알도라는 자그마한 섬 앞으로 띄엄띄엄 배들이 정박해 있고 횟집이 길게 이어진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윤동주 (1917~1945) 시인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다. 그저 선생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켠이 쏴하다. 측은지심에 가슴이 저려 온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관했던 낡은 정병욱 가옥(근대문화유산 제341호, 1925년 건립)과 시비가 있다. 횟집 즐비한 포구 앞에, 인기척 없는 가옥 한 채가 썰렁하게 있다. 문 굳게 닫힌 유리창 너머로 윤동주 시인과 친구의 학창 시절 얼굴이 해맑게 미소 지으면 반긴다. 마루 한켠이 열려 있고 ‘원고가 숨겨져 있던 곳’이라는 안내 글자가 있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윤동주 시인의 원고가 숨겨져 있었을까? 시인이 일본유학을 떠나기 전, 3부의 원고를 만들었다. 1부는 자신이, 1부씩은 은사 이양하 교수와 절친한 친구이자 후배였던 정병욱에게 맡겼다. 정병욱이 학병으로 징용 당하자 광양의 어머니에게 원고를 맡긴다. 어머니는 일제의 수색을 피해 집 마루바닥 밑에 원고를 숨기고 보관해왔다. 무사히 돌아온 정병욱은 1948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주옥같은 윤동주 시인의 시가 이렇게 알려지게 된 데 큰 기여를 한 집인 게다.
광양시에서는 윤동주, 정병욱 작은 기념관, 도서관, 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하고 소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또 윤동주 백일장, 문학상을 추진하는 등 윤동주 시인의 제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할 생각이다. 봄 벚굴로, 가을엔 전어축제를 하는 망덕포구에서 시인을 떠올릴 수 있는 이런 뜻깊은 가옥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여정이다.

여행정보

○찾아가는 길 : 서울출발 → 호남고속도로 → 익산 JC → 완주JC에서 순천 광양방향 간 고속도로 이용 → 광양IC → 광양읍에서 매천 유적지 보고 10여분 가면 옥룡면 소재지다. 옥룡면에서 광양읍내로 다시 나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월 IC로 나오면 망덕포구를 만나기 쉽다.

○별미집 : 광양읍내엔 불고기 특화거리가 있다. 매실한우(061-762-9178), 3대광양불고기(061-762-9250) 조선옥숯불갈비(061-792-8559), 금목서(061-761-3300)등을 꼽는다. 또 도선국사마을에는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고 손두부가 맛있다. 망덕포구에는 봄이면 벚굴이 유명하고 제철마다 생선회를 즐길 수 있다. 특히 벚굴은 짜지 않고 씨알이 굵어 맛이 좋다.

○숙박정보 : 백운산 자연휴양림(061-763-8615, www.gwangyang.go.kr)은 울울창창하고 하늘 향해 쭉 뻗어 올라간 소나무 숲이 가히 장관이다.

■ 글·사진 이신화 (on the camino의 저자, 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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