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능주의 ‘경계’…기업 생태계 복원 머리 맞대야”

#1“대기업 거래조건이 그렇게 지저분한지 처음 알았습니다. ”
기능성 소재를 활용한 특수 아웃도어 의류를 생산하는 S사 대표는 일본과 캐나다 수출을 통해 매출의 80%를 달성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화학회사에 아웃도어 의류를 납품한 A대표는 이미 입고됐어야 할 제품들이 물류창고에 남아있어 깜짝 놀랐다.
A대표는 “자사 로고가 찍힌 제품들을 처음부터 전량 인수해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마다 물류창고에서 가져다 쓰면서 정산해줬다”며 “결국 제품에 대한 트집을 잡더니 나머지 물량 인수거부로 끝이 났다”고 밝혔다.
A대표는 “거래가 2년쯤 지속되다가 결국 다른 업체가 들어왔다”며 “모르긴 몰라도 그 회사도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보안패키지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 E사는 경찰청 보안시스템 구축사업에 입찰을 준비중인 대기업D사로부터 제안서 작성을 요청받았다. D사로 낙찰될 경우 5억원을 하도급대금으로 주겠다는 구두 통보도 왔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 E사는 10여명의 인력을 투입하고 5천만원을 들여 제안서를 만들었다.
결국 D사는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고 중소기업 E사는 하도급거래 체결을 요청했으나 D사는 하도급대금을 2억원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렸다.
E사 관계자는 “대기업과 거래하다보면 이런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대·중기 동반성장 어디까지 왔나=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문제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여전히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에 따른 불공정거래가 줄지 않고 기술 및 인력탈취, 중소기업영역 사업진출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의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경제 성장과정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균형적으로 발전했다는 응답은 19.3%에 불과했다.
불균형 성장의 이유로는 '정부의 대기업 위주 정책'(60.1%)과 '대·중소기업의 수직적 갑·을 문화'(31.2%)를 꼽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성장요인을 묻는 질문에서도 '대기업 스스로의 노력'이라는 응답비율은 3.8%에 불과한 반면 '정부의 대기업 우선정책'이라는 의견이 75.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의 82.3%는 대기업이 동네슈퍼와 빵집, 두부사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는 것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무분별한 사업확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중소기업 균형발전을 위한 경제민주화 실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87.7%로 조사돼 동반성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이달말 발표를 앞두고 있는 대기업 동반성장지수 평가가 최우수·우수 등급이 극소수에 머물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어 대·중기 동반성장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것으로 분석된다.

□제값받기 힘든 납품단가=협동조합을 통한 납품단가 조정협의신청제도가 지난해 도입됐지만 중소기업의 절반이상이 여전히 원자재가격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말 대기업 납품기업 200여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원자재 가격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실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84.3%가 지난해 보다 주요 원자재가격이 상승했다고 응답했으나 납품단가에 모두 반영한 경우는 10.5%에 불과했다. 반면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대답은 56.2%로 조사됐고 평균 원자재가격 상승률은 14.4%였다.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모두 반영하지 못한 기업의 절반이상(53.5%)은 아예 납품단가 조정신청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납품단가 조정신청과 관련 신청기업 중 대부분(90.9%)이 거래모기업에 직접 신청했으며 협동조합을 통한 신청은 9.1%에 불과했다.
협동조합을 통한 납품단가 조정협의신청율이 저조한 것은 협상권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75.4%)는 인식과 모기업과의 거래단절을 우려(42.2%)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반성장 분위기 확산 이렇게= 삼성출신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예전에 삼성에서 고속버스회사를 운영하려 한 적이 있었다며 동반성장에 대한 대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고속버스 사업과 관련 최고위층까지 보고 됐지만 돈은 되지만 격이 맞지 않는다며 사업철수가 결정됐다”며 “대기업들이 좀 더 국가경제에 기여 가능한 격에 맞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체근로자 88%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곳이 중소기업으로 산업구조를 중소기업 중심의 선순환 구조로 형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축산가공품을 생산하는 A대표는 “중소기업이 성장해야 고용이 안정되고 고용이 안정돼야 소비와 저축이 늘어난다”며 “소비와 저축이 늘어야 기업이 성장하고 다시 고용이 늘어나는 선순환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왔다.
식품업계의 B대표는 “대기업들은 시장경제원리를 주장하지만 중소기업이 어느 정도 시장을 키워놓으면 자기들이 뛰어들어 독점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내시장을 독점한 대기업들은 OEM 생산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에 오히려 식품관련 해외바이어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구조의 악순환을 막자는 제안도 있다.
플라스틱 용기를 생산하는 C대표는 “대기업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게 된다면 자본과 홍보력, 유통시스템 등 어느 곳에서도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결국 도태될 것”이라며 “ 이러한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중소기업은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고 경제는 악순환 구조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C대표는 “우리 산업화 역사를 보면 글로벌 기업으로 부터 관세나 규제 장벽을 통해 국내 대기업을 보호해 왔듯이 중소기업 역시 대기업 횡포로부터 일정부분 보호가 필요하다”며 “국가가 중소기업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단순한 머니게임의 약육강식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도입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또한 보완이 필요하다.
우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자율적인 합의에 따라 업종이 지정되고 합의사항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실효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여기에 업종지정이 제조업에 국한돼 서비스업까지 확대시켜야 한다는 중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의 편법 SSM 진출도 문제다. 대기업들이 관련법에 따라 SSM 진출이 어려워지자 사업조정 회피를 목적으로 가맹점 형태의 SSM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편의점에 대한 사업조정 신청이 저조한 틈을 타 편의점 형태의 SSM 개점도 늘고 있다.
광주수퍼마켓조합 관계자는 “대형유통기업의 시장 독과점을 막기 위한 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나 적합업종 지정 대상을 유통업까지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화점 수수료 문제도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화점과 거래하는 P대표는 “지난해 백화점이 발표한 수수료인하 방안은 정부 압력에 떠밀린 결과라는 게 중소기업계 인식”이라며 “근본원인 해결을 위해서는 입점기업 협의체 구성 및 운영 의무화, 수수료율 상한제 도입 법제화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연구원 신상철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통한 시장왜곡이 심했다”며 “한시적이든 효과가 있을 때까지든 적합업종제도의 법제화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뿌리산업 규제완화 이렇게

“뿌리산업 뒤흔드는 비현실적 규제 철폐를”

지난 1983년 40여개 주물업체들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천에 주물전용단지를 설립했다.
경인주물공단에 소속된 이들은 15만톤의 주물을 생산, 국내 생산량의 20%를 담당하고 있으며 수도권 내 주요 생산기반으로 자동차산업 육성에 필수적인 뿌리산업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인천시는 친환경 산업단지 조성과 지역환경보전을 이유로 기본계획을 변경, 경인주물공단이 속해 있는 산업단지 입주업종에서 주물업종을 삭제해 단지내 주물업종의 입주를 제한 시켰다.
그러나 각종 환경법령 규제로 대기, 수질, 악취 등의 배출기준이 엄격히 적용되고 있으며 그 수준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실정에서 법령이 정하는 환경배출기준 준수여부와 무관하게 환경오염물질 배출을 이유로 산업단지 입주제한이 문제라는 게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업계관계자는 “주물업종은 관련법령 준수를 위해 이미 개별 업체별로 수억원 상당의 환경시설 투자가 이뤄졌다”며 “이 시설은 공정배치 및 용량 등의 차이로 이전이 불가능하고 동일업종으로 양도 등이 제한돼 설비투자비용 회수는 고사하고 시설해체와 처분을 위한 추가비용 부담이 발생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오염배출시설 설치 의무대상을 확대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올해부터 추가 시설투자가 불가피하다”며 “조합원사중 일부는 충남 예산신소재산업단지로 이전을 추진중이어서 70억원에 달하는 추가 투자 및 이전후 중복투자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환경관련 법률 강화로 이전을 추진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추가 시설투자 부분을 충분히 인정하나 기존 시설의 양도 양수를 금지하는 기본계획은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뿌리산업육성법이 마련되는 상황에서 주물업체들의 중복투자를 나몰라라 하는 지자체 입장은 분명 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관련법에 따라 협동화 부지가 먼저 설립되고 산업단지가 조성됐는데도 비현실적인 산업단지관리 기본계획 추진으로 이같은 문제가 발생됐다”며 “무조건 업종을 제한 할 것이 아니라 오염방지 시설 확충여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공생발전을 위한 중소기업인 간담회’가 지난해 9월8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비롯해 중소기업 대표 20여명이 참석했다. 〈중소기업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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