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을 꺾여도 굴하지 않는 인생

1938년 부유한 지주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2살 때 집안이 반혁명분자로 몰리고, 20세 때부터는 무려 22년 동안 강제수용소와 교도소 생활로 고난의 시간을 지내며 40년을 지낸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우여곡절 끝에 나이 마흔이 넘어 충칭시 최고규모의 출판사 사장으로 성공하고 54세의 나이에 오토바이 업계에 진입하여 중국 최대 거부로 부상하였다. 그는 현재 자동차, 금융, 부동산, 축구 팀 등 13여개의 계열사를 소유하고 있고 Forbes는 그를 중국의 50대 부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인생의 절반을 너무나도 불우하게 보내야했지만 지금은 중국 최고 부호로 떠오른 인밍산! 그가 5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사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자.
인밍산이야말로 日新又日新! 즉, 날로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워지는 CEO다. 실제로 그는 “진정한 성공은 자신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라고 말한다. 어제의 가난한 나, 또 어제의 성공한 나를 버리고, 오늘에 안주하지 않으며 새로운 나를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오랜 고난의 시절을 길었던 만큼 어느 정도 성공하면 그 상태에 만족하기 마련인데, 그는 달랐던 것이다. 고희를 훌쩍 넘은 나이에도 그는 자신은 ‘나는 영원한 18세’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청년 같은 대담함과 승부욕으로 가득 차 있는 한 육체적 나이와는 상관없이 영원한 CEO인 것이다.
인밍산의 일신우일신 정신은 경영에 있어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바로, 自主創新 전략이다. 오토바이 사업 초기 인밍산은 기술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중국 최초로 전자식 엔진을 개발하여,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동차산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토종 자동차 브랜드가 선진 자동차를 카피하는 데 열중한 반면 인밍산의 리판모터스는 중국만의 100% 독자기술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공격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인밍산은 자동차업계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자체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기보다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 낫다”는 신념으로 독자기술 확보에 주력한 결과, 리판은 중국 자동차업체 중 최대 특허를 보유한 업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에티오피아의 홀란드 카가 리판그룹에서 라이센스를 받아 자동차 생산에 들어갔다. 선진기업으로부터 라이센스를 구입하여 자동차를 생산하던 중국 입장에서는 라이센서 판매라는 획기적인 사건을 일궈낸 것이다.
인밍산은 자신의 고난의 시절을 되새기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과거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중국의 필연적인 역사일 뿐이며, 역경의 시기는 오히려 나의 성격과 의지를 연마시켜주는 기회였습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겪게 될 수 있다. 문제는 스스로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고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강제노동과 하루벌이 삶을 연명하면서도 그는 배움을 중단하지 않았고, 결국 교도소에서도 스스로 쌓은 풍부한 지식을 얻어가며 발전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것이다. 百折不屈! 백 번을 꺾여도 굴하지 않는 인생! 아니 오히려 백번 꺾일수록, 맷집이 더 단단해진 인생! 그것이 바로 인밍산의 인생이었다.

이원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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