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도(長峰島). 섬의 길이가 길고 고만 고만한 봉우리가 산줄기를 따라 수없이 많아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또 동에서 서로 산이 길게 지붕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길 ‘長’, 봉우리 ‘峰’자를 붙여 만든 이름이라고도 한다. 애시당초 계획에 없던 섬을 찾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정말 오길 잘했군’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하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영종도 여행을 결정했고 그곳이 얼마나 변하고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을왕리, 왕산리, 선녀바위, 무의도 선착장에서 회차를 하게 된다. 변한 것이라고는 번잡한 상흔을 재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회차로를 못 찾아 신공항국제도로의 비싼 입장료를 하루 두 번이나 감당하면서 삼목항에서 차를 배에 싣는다. 10분이면 닿는 신도선착장을 비껴 30분 정도를 더 가니 장봉도다. 정보는 섬에서 얻으리. 섬이라는 건 달리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곳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아예 들어가는 배에서는 돈조차 받지 않는다. 선착장에 차를 내려 주차장에서 어여쁜 인어상을 만난다. 장봉도는 인어 전설이 흐르는 섬이다.
전설이 적혀 있다. 마음 착한 어부가 섬 앞바다의 날가지 섬에서 고기를 낚았다. 어부는 매번 허탕을 치다 마침내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건져 올렸는데 그게 인어였단다. 어부는 인어를 불쌍히 여겨 바다에 풀어주었는데 그 후부터 어부의 그물에는 물고기가 찢어질 만큼 많이 잡혔단다. 바닷가에 으레 있을 법한 전설을 접하고 섬 우측 끝으로 발길을 옮긴다. 눈길을 끄는 잔교가 있다. 긴 잔교를 건너 대말도에 이르니 소나무 사이에 아담한 정자 한 채가 서 있다. 대말도의 또 다른 이름은 딴섬이라고도 하는데 그 옆에는 그것보다 더 작은 바위섬 소말도도 나란히 떠 있다. 간조 때가 되면 이 아래는 거대한 습지로 변한다. 장봉도의 습지는 한때 람사르 습지로 등록 추진할 정도로 가치가 높다. 갯벌이 살아 있는 곳. 그 덕분일까? 한 주민은 큰 낚지를 많이도 잡아 횟집에 풀어 놓는다.
잔교를 비껴 서서히 섬 속으로 들어간다. 장봉도에는 세 곳의 해수욕장이 있다. 맨 처음 만나는 곳이 옹암해변이다. 해변 길이가 2㎞나 되는 긴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간조 때는 해변만큼이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게 펼쳐진 갯벌이 드러난다. 노송이 있어서 피서철에는 가장 사람이 많이 찾을 듯하다. 으레 그렇듯이 횟집이 몇 집이 있다.
텅빈 바닷가. 모래톱이 넓지 않은 곳에 한 아낙이 걸어 나온다. 단지 화장한 얼굴 탓은 아니지만 동네주민의 얼굴은 아니다. 그녀는 비틀 거리듯, 힘겨운 듯, 동죽을 한가득 짊어지고 있다. 고향이 이곳인 그녀는 지금은 외지에서 살다 친척집에 놀러 왔다가 해변에 나가 홀로 조개를 잡았단다. 갯벌엔 동죽이 지천인지라 차마 두고 올 수 없었다. 철퍼덕 앉은 엉덩이에 물이 스며들었지만 조개 잡는 재미에 빠져 기진맥진한 것이다. 섬 안의 공용버스를 타려면 더 한참이나 걸어나가야 하는 그녀를 ‘나 몰라라’ 외면할 수가 없다. 갯물이 차에 밸거라고 우려하는 그녀의 마음 씀이 오히려 곱다. 그녀를 집 앞에 내려주고 진촌 해변을 찾는다.
식당이 하나 있고 제법 찾는 사람이 많은지 솔숲 사이에 잘 지어놓은 숙박동도 있다. 바다 모래사장에 내 발자욱을 남기며 천천히 걷는다. 마음이 매우 차분해진다. 진촌 나루에는 작은 배들이 떠 있고 바닷 일을 하는 어부의 몸짓이 부산하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놀다가 다시 장봉 3리를 지나 고갯길을 넘는다. 제법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 길은 윤옥돌 해안에서 끝이 난다. 아마 윤기나는 돌이 있어서 붙여진 해변인 듯하다. 잔돌과 큰 돌이 어우러진 암석해변이다. 해변 끄트머리는 장봉도의 낙조 포인트라는 가막머리다. 트레킹 팻말이 있다. 하지만 애초 계획에 없던 섬 여행인지라 하룻밤 머물 수가 없다. 이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장봉도에 첫발을 내딛던 선착장 부근에서 삼목으로 배를 기다리면서 굴, 새우젓, 동죽, 생합을 파는 아낙들 곁으로 다가선다. 강화 선수포구에서 잡아 담았다는 새우젓 한통을 구입하고 돌아서려는데 대합은 1주일 동안이 지나도 괜찮다는 말을 흘린다. 미역국에 넣어 끓여 먹고 싶은 마음에 혹시나 해서 사들고 온 백합. 그 백합이 시간 더 지나면 상할까 싶어서 물만 붓고 삶는다. 집안에 장봉도의 바다 내음이 가득 배었다.
여행이란 순전히 주관적이지만 장봉도는 내게 있어서 참으로 행복한 섬이었다. 그 섬이 내게 준 것은 없다. 그저 느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그리고 화려하지 않은, 사람 손때가 덜 묻은 그런 섬 풍치가 가슴 한켠에 들어 앉은 것이다. 배를 타고 들어가 그날로 난 이 섬을 떠나왔다. 하지만 이 섬에 남은 사람들은 질기디 질긴 삶을 이어갈 것이다.

여행정보

○ 주소 및 문의전화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장봉리, 032-899-3410, http://www.jangbongdo.com/
○ 찾아가는 길 :서울 → 영종대교 → 인천국제공항 방향 → 화물터미널 표시판 나오면 오른쪽 → 5분 가량 직진 → 삼목사거리 → 삼목선착장. 월미도에서 배를 싣고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
○ 배편문의 : 삼목부두에서 장봉도행 배는 1일 11회(07:10~18:10)정도 운항. 40분 소요. 장봉도에서는 매시 정각(07:00~18:00) 배가 뜬다. 문의:세종해운(032-884-4155, 032-751-2211, www.sejonghaeun.com). 장봉매표소:032-751-0193.
○ 추천 별미집 : 전라도 고흥이라는 욕쟁이 할머니(011-9182-5136)집의 맛이 괜찮다. 또 옹암해수욕장 앞 옹암식당(010-9227-5243)도 있다.
○ 숙박정보 : 삼릉 근처에는 특별한 숙소가 없다. 보문관광단지에 리조트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온천수를 이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 여행포인트 : 장봉도는 트레킹과 자전거, 캠핑 등으로 인기를 누리는 섬이다. 트레킹 코스는 약 15km 정도. 전반적으로 높지 않고 작은언덕(능선)이 많아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 등산로 양쪽으로 모두 바다가 펼쳐진다. 버스정류소마다 등산로 이어지기에 코스는 각자 선택하면 된다.

■ 글·사진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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