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중략)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중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시스는 숲의 요정 에코의 사랑을 외면하고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만을 사랑하다가 물에 빠져 죽게 되는데 그곳 물가에 수선화가 피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선화의 꽃말이 ‘자기애’ 또는 ‘자기도취’라고 하며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자기 자신에게 깊게 애착하는 것을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사람뿐 아니라 길가에 피어있는 패랭이꽃, 연못가 물위를 둥둥 떠다니는 소금쟁이, 살구나무 가지에 앉아있는 작은 박새 심지어 하느님도, 우주 모든 만물은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특히 고향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불현듯 밀려오는 정체성의 대한 회의로 외로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져봅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계속 혼자 살아왔다면 외로움을 느꼈을까? 역시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 하나하나의 개체가 독립적인 존재로 생을 영위하여야 하는 압박과 소멸이라는 잠재적 자연의 섭리가 상충되어 나타나는 무력감에서 기인하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 Hesse는 ‘외로움은 운명이 자아에게 이끄는 길’이라고 하였으며 법정스님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이 자기정화를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물질만능사회의 거울에 비쳐진 소외되고 초라한 자신을 문득 발견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들, 지나친 외로움에 젖어 감상적으로 빠지는 것은 경계하여야겠지만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찾아드는 외로움을 관조적인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는다면 법정스님 말씀처럼 자기정화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과도하게 자기중심이거나 자기도취로 빠져드는 배타적인 생활을 떨쳐버리고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밝고 건강한 생활을 지향할 때 외로움으로 인한 고독이나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으면서 종소리를 마음속에 담고 마을로 내려오는 산 그림자를 벗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화적이고 서정적인 생활은 살아있는 존재가치를 소중하게 느끼게 해주며 물질만능사회에서 오는 상대적 소외감을 덜어줄 것입니다. 외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원숙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길 때 자신과 타인 사랑의 본질을 깊게 이해할 수 있으며 세상은 훨씬 더 넓어 보일 것입니다.
외로우신가요? 가수 양희은이 번안하여 부른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눈부시게 푸르른 뒷동산에 올라보시지요. 산봉우리가 무성영화처럼 제 그림자를 데리고 골짜기로 내려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늘로 울려 퍼지던 종소리가 소나무 숲에 내려앉아 숨 고르며 메아리를 들려주고 있을 것입니다.

글·시인 이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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