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명을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해 수를 늘리고,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일종의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약 37억년 전 최초의 생명체가 출현한 이후 전체 생물의 60~80%가 멸종하는 시련을 다섯 차례나 겪었지만, 유전자는 환경을 극복하며 지구상에서 번성해 왔다. 십년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도 쉽지 않은 기업의 현실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전자가 장기간 성공적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몇 가지 공통적인 기본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으로 생명의 기본 원칙을 통해 기업이 장기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원칙은 유전자를 혼합하여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다. 생명체는 약 11억년 전 개체 간에 유전자를 교환하는 유성생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유전자의 다양성이 비약적으로 증대되고 생존력도 크게 높아졌다. 유성생식은 다른 개체가 가진 좋은 특질의 유전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종 전체에서 좋은 유전자의 비중을 높게 유지하는 방편이다.
만약 고등생물이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복제하는 무성생식을 한다면 유전자 결함이 계속 누적돼 종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기업도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 보다는 외부역량을 접목해 다양성을 확대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장에 유리하다.
두 번째 원칙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전자는 돌연변이를 통해 환경적응력이 높은 개체가 선택되고 진화해 왔다. 유전자의 변이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이라고 할수 있다. 서식환경이 안정적일 경우에는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도태되지만, 환경이 급변할 경우 돌연변이의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해 주도적인 유전자가 교체된다.
기업도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의 환경변화 위험에 대비해 창조적인 변이를 끊임없이 시도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원칙은 자기파괴를 통해 매일 새로워진다는 점이다. 세포가 노화되어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병원균 등에 감염될 경우 스스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세포자살'을 통해 개체 전체가 항상 건강하게 유지된다.
기업도 사업 구조와 운영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주기적인 점검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산업별 선도기업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상시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구조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생명의 원리가 기업에게 주는 시사점은 장기간 생존과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환경이 수시로 급변하기 때문에 새로운 역량과 조직문화를 지속적으로 도입해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기존 사업의 안정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절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세포 내에는 유전자의 고장이나 돌연변이를 고치는 수리유전자가 있어서 변이가 일어나려는 경향과 억제하려는 경향 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업도 변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과 운영 및 재무적인 통제시스템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유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유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