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 패션 1번지 명동에 나가보면 Zara, H&M, 유니클로 등 SPA 업체들이 대형 매장을 속속 오픈한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패션브랜드가 6개월이 걸려 출시한 신상품을 1년에 4번 내놓던 것을 SPA 업체는 보름 만에 기획, 생산해서 매주 두 차례씩 진열하는 엄청난 스피드로 업계를 뒤흔들었는데, 성공비결은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 판매 등 벨류체인 활동 전체를 직접 수행하면서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없앤 데 있다.
그런데 SPA 업체와는 전혀 다른 게임의 방식으로 의류를 생산하는 숨은 실력자가 있다. 바로 2011년 매출 24조원, 의류 20억벌 생산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달성한 홍콩기업 리앤펑이다. 리앤펑은 의류를 생산해서 월마트와 같은 유통업체, 아베크롬비, 리바이스 등의 패션업체에 납품하는데, 생산 설비나 공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대신 1만 8천여 개에 달하는 의류공급업체에 대한 정보를 갖고 주문을 받으면 방직, 염색, 단추나 지퍼 부착 등 각 공정을 담당할 최적의 업체를 선별해서 의류를 생산하고 조달한다.
결국 Zara가 패션의 유통기한을 짧게 만들기 위해 디자인, 생산, 물류 활동을 직접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리앤펑은 플랫폼을 구축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도록 유인하는 전략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리앤펑이 마에스트로 역할을 위해 구축한 플랫폼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1만 8천여 개의 공급업체와 패션업체들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IT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플랫폼 참여 공급업체의 유휴 생산 능력을 실시간 확인해 주문에 맞는 공급업체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주문에 대한 진척 상황을 정확히 모니터링 해 생산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각 공정의 구성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동기화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역사무소와 물류거점이다. 40개 이상의 국가에 위치한 240여 개의 지역사무소와 물류거점에서 새로운 고객과 공급업체를 발굴하거나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주문에 맞춰 공급업체 선정부터 주문이 완결될 때까지 생산과 물류를 책임진다.
세 번째는 30/70의 운영 규칙인데, 공급업체가 가진 생산 용량의 30% 이상 주문할 것을 보장하되 70% 이상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 긴밀한 관계는 유연성과 학습을 줄이고 반대로 너무 느슨한 관계는 집중과 몰입을 줄이기 때문에 중도를 지킨다는 것이다. 협력업체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 30% 이상의 주문을 보장하되 이 공장이 다른 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최신 트렌드를 학습할 수 있도록 70% 이상 주문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
앞으로 산업의 밸류체인이 복잡해지고 각 기업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될수록 이런 기업들을 잘 지휘해서 최종적으로 높은 고객 가치를 만들어내는 마에스트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리앤펑은 패션 같은 전통산업도 플랫폼을 활용해서 산업의 밸류체인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커다란 사업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조원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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