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 개론’이 나름 인기를 얻었다. 그 영화 속에는 ‘첫사랑, 첫키스, 첫눈’등 잊고 있던 첫 사랑의 감정을 들썩이게 했다. 문득 어릴 적 가슴을 쏴하게 한, 그 순수함을 오랫동안 잔영으로 남게 했던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가 떠오른다. 교과서에 실렸던 이 단편소설이 오히려 개인의 첫사랑의 감정보다 더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영화도 기억 속에 잊고 있었던 감정을 되살려 주지만 양평의 소나기 문학촌에 가도 그런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차라리 한 차례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좋겠다. 삐질삐질 땀나게 하는 땡볕이 내리쬐는 날, 양평의 소나기 문학촌을 찾는다. 여름 더위를 식히려는 듯 수능리 계곡에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물속에 내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가게에서 할인되지 않은 하드 하나로 더위를 식히며 문학촌으로 들어선다. 문학촌은 마을과 약간 비껴 외따로 떨어져 고즈넉하고 한적하다. 주변 낮은 야산으론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소설가 황순원(1915∼2000) 선생의 문학촌은 2009년 6월 이곳 소나기마을(서종면 수능리 산 74)에 개장됐다. 문학촌이 들어서고 나서 없던 지명이 만들어진 것이다.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누구나 배웠던 단편소설이 아니던가? 소나기는 1952년 ‘신문학’에 발표한 단편 소설로 원제는 ‘소녀(1)’이다. 짧은 시간 동안 갑자기 세차게 쏟아졌다가 그치는 비처럼, 어느 가을날 한 줄기 소나기처럼 너무나 짧게 끝나버린 소년과 소녀의 안타깝고도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그려 냈다. 긴 세월 지나도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는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북 출생인 황순원 선생의 문학촌이 왜 양평 땅에 들어섰을까? 그 이유가 있다.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날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소설 말미에 쓰여진 ‘내일 소녀 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는 문장으로 인해 이곳에 문학촌이 생긴 것이다.
소나기 마을은 부지가 약 4만7640㎡(1만4000평)이고 문학관은 약 2035㎡(800평)로 제법 규모가 느껴진다. 당연히 소설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컨셉트로 만들어졌다. 문학관 건물의 중앙 부분이 소설속의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를 피했던 수숫단 모양을 형상화해 원뿔형 모양으로 되어 있다. 천정은 투명한 유리. 햇빛이 실내까지 파고들어 내리쬔다. 그리고 중앙홀 가운데에는 황순원 선생의 육필 원고를 새긴 투명한 판과 반원형으로 된 황순원 선생의 연대기 등이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유품 전시, 작품 체험, 애니메이션 영상실, 문학카페 등 모두 4개의 전시실로 나뉘어져 진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소나기 내리는 장면이 실감나는 애니메이션이다. 소설을 그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소설이 끝나는 장면(소년이 소녀가 죽었다는 말을 부모로부터 듣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이야기다. 소설의 뒷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상상력을 펼치게 하는 것이다.
문학관 앞에는 넓은 ‘소나기 광장’이 있다. 소나기광장 주변에는 황순원 소설을 소재로 다양하게 꾸민 예쁜 문학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수숫단, 오두막, 개울, 징검다리 등이 놓여 소설 속을 현실로 재현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연출을 해봐도 좋을 듯하다.
이곳에서는 백일장, 소나기 그림 그리기 등 황순원 문학제가 매년 열린다. 그 외 청소년문학캠프, 유명 작가 초청 강연회, 황순원문학상 등 행사도 펼쳐진다. 또 최첨단 시설을 갖춘 세미나실이 있어 원하면 이용 가능하다. 사진은 수능계곡 모습.

- 글·사진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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