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정책당국과 학계는 중소기업의 고용창출 기능에 주목해 왔다. 중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정부 부처별 직접 사업의 종류도 많아지고 규모도 커졌다. 부처별 중소기업 지원은 명시적인 사업 외에 개별사업 중 부분적으로만 중소기업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아 연간 그 규모가 10조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을 뿐 공식적인 발표는 찾아볼 수 없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사업은 그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컨트롤 타워조차 없다는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자금 운용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오래된 경우 30년 이상이나 된 기존 정책금융기관과의 차별화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부처별 중소기업 지원사업의 경우, 큰 틀에서 보면 창업기업 지원, 신성장산업 지원, 소상공인 지원 등은 기존 정책금융기관들이 중점사업으로 이미 시행 중이거나 쉽게 기능별 지원 사업으로 통합할 수 있는 것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책자금의 운용 주체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첫째,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운용주체는 인사철마다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는 공무원들의 영역이 돼서는 안 된다. 유망 중소기업을 선별해 지원하는 것은 오랜 기간 기업정보를 축적해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간 기업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해야하는 전문영역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中企 직접지원 비효율

중고자동차 시장, 의사·변호사의 서비스 등 거래 상대방 상호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경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제3자는 이들 영역에 정통한 전문가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중소기업 자금지원의 경우도 오랫동안 기업에 대한 정성적·정량적인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해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할 수 있는, 중소기업을 잘 아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수행돼야 마땅하다.
둘째,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은 예산절약과 사업추진의 전문성 측면에서 정책금융기관의 일종의 신용창출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처별 중소기업 자금지원은 전액 정부예산 투입으로 이루어지므로 재정에 미치는 손실 및 위험부담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 신용보증기금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과 같은 기존의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지원의 경우, 정책적으로 설정된 운용배수 범위 내에서 신용을 보증하고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공급하기 때문에 실제 중소기업 지원에 소요되는 예산은 손실에 대한 2차보전 정도의 소규모에 불과하다. 또한 경제위기시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중소기업 지원은 중앙은행의 금리 수단에 비해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대한 선별적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직접적이며 실물시장에 미치는 전달 속도도 빠르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경기대응 처방 수단이기도 하다.

정책금융기관이 운용 주체돼야

셋째, 관료주의의 폐해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각 부처가 중소기업에 대한 재정자금을 직접 집행하게 되는 경우 사업의 본질보다는 내 영역 지키기 차원에서 자금을 운용하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재정자금을 거머쥐고 있는 한, 돈을 쓰기 위해 관련 법령을 제정하고 이에 근거해 하부 유관 협회를 만들어 영향력을 행사하고 관변학자를 동원해 자신들의 사업을 정당화하는 등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본질에 충실하기 보다는 간접비용(overhead cost) 지출만 늘어나게 된다.
중소기업은 부가가치와 고용창출능력 등 국민경제적 중요성에 비해 주식, 채권과 같은 직접금융을 통한 자본조달이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또한 기업의 신용평가에 수반되는 위험을 부담하는 것이 민간금융기관의 인센티브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중소기업 금융시장에서 정부개입이 필요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예산지출의 버퍼 역할로써 중소기업 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하고 지출은 이들 기관의 손실보전 및 자본 확충 구조를 마련해 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책금융 중복지원 문제만 해도 자금 수요자 문제가 아닌 자금 공급자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고 그 중심에는 정부가 직접 집행해 온 재정자금도 한 몫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정부의 중소기업 금융시장 개입은 기존의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중소기업 지원 대상 영역 설정 고민에 한정돼야 한다.

노용환
서울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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