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인가. 여야 정당이 경제민주화를 정강(政綱)에 도입했고 유력 대선후보들 거의 모두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절대가치로 내건다.
말만 무성한 경제민주화는 일반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경제학자들조차 헷갈리는 개념이다.
‘경제민주주의는 의사결정권을 주주로부터 광범한 이해 관계자(노동자·고객·공급자·이웃·일반대중을 포함한)에게 이전하는 것을 제의하는 사회경제적 이데올로기다. 경제민주주의는 간명하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도 경제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완전한 경제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확보하는 길을 열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위키피디아 사전의 설명이 이렇다. 경제민주화는 모든 경제문제를 민주주의 방식인 다수결 원리로 해결하겠다는 경제문제의 정치화나 다름없다.
헌법 제119조2항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119조1항(‘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조항은 대립관계인가 보완관계인가도 논란의 대상이지만 경제민주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국가가 경제 기본권을 어느 정도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경제민주화 빌미 기업규제 곤란

정치권의 주장을 종합하면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또는 재벌 때리기와 같은 걸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치권은 서민생활의 어려움과 투자 감소, 일자리 창출 부진 등이 모두 대기업과 재벌의 책임인 것처럼 호도하고 이런 모든 문제를 경제민주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기업과 재벌의 일탈된 행태를 보는 일반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재벌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사야할 이유다. 재벌과 대기업의 불법·탈법과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한다.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사면권이 남용돼서도 안 된다.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탈취하는 일은 물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불법행위도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中企, 공정거래·동반성장 원해

한국경제는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를 외치면서 이런 경제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개선,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과 같은 과제를 풀 구체적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재벌을 때리면 경제가 활기를 띄고 중소기업에 생기가 돌까. 대기업의 잘못은 당연히 바로 잡아야하지만 지구촌 경제는 무한경쟁체제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별도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계가 원하는 건 경제민주화를 빌미로 한 대기업 공격이 아니라 공정거래다.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은 일찍이 대기업을 규제하는 것을 중소기업 살리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송재희 부회장은 “중소기업계가 원하는 것은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언제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그런데도 국내정치는 어려운 경제를 더 어렵게 하는 데 한몫을 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외친다. 그런 외침에는 대기업과 재벌을 희생양으로 삼아 서민의 울분을 달래며 유권자의 표심(票心)을 잡겠다는 작전이 숨어있다.
어떤 경우든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막는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 그건 세계를 향해 뛰고 있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고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경제 살리지 않는 경제민주화 주장은 허공의 메아리다. 기업을 옥죄는 일이야 간단한 일이지만 기업을 살리는 일,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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