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는 없다’ … 공작기계 산업 선도 비결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남선기공은 국내 공작기계산업의 대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작기계 제작이 전무했던 국내 상황에서 국가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공작기계를 생산했고, 현재 소형 범용밀링에서부터 최첨단 5축 머시닝센터 등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공작기계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후에도 부단한 기술·품질혁신을 통한 제품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공작기계업체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1950년 대전 시내에 ‘남선기공사’를 설립한 손중만 창업주는 ‘개인은 가도 기업은 영속되어야 한다’는 정신으로 철저한 신용을 강조해왔다. 이 후 회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대 손종현 대표가 경영을 맡으면서부터다.
손 대표는 1986년 창업주가 작고하자 이듬해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 1971년 대학(경희대 경영학과)을 갓 졸업한 직후 아버지 회사에 합류했으니 16년간 경영수업을 받은 셈이었지만 막상 회사를 꾸려 나가는 일은 벅찼다.
손 대표는 “다들 회사가 곧 망할 것이라고 했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는 사람이 넘겨받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물려주신 회사를 어떻게든 끌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성장의 발판이 된 것은 해외 시장이었다. 손 대표는 미국 업체와 선반기술계약을 체결(연간 240대)했고, 대표를 맡은 후 3년 뒤에는 오랜 협력 파트너인 일본 시즈오카철공소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공작기계의 일종인 수직 머시닝센터를 만들어냈다.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1986년에는 국내 최초로 ‘자동 마찰 용접기’를 개발했고, 좋은 공작기계를 만들기 위해선 안정적인 주물공급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1991년 충북 옥천에 주물 생산업체인 만중금속도 세웠다. 1993년에는 국내 최초로 다면다각가공기(SOLAR)를 개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같은 손 대표의 노력 덕에 회사는 쑥쑥 성장했다. 1991년에는 제1회 중소기업대상을 수상(산업자원부)했고, 1997년엔 ‘100만달러 수출탑’도 받았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던 남선. 위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1998년 외환위기로 국내 경기가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경기흐름에 따라 부침이 심한 공작기계 업종에서는 극복하기 힘든 시기였다. 주요 거래처들이 잇따라 부도를 내면서 남선기공도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고, 결국 1998년 법원에 화의를 신청했다.
그러나 손 대표는 이에 포기하지 않았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구조조정을 했고, 한국 최초로 소사장 제도를 도입해 효율적으로 정착시키며 획기적인 경비절감도 이뤘다. 이 같은 노력 끝에 화의 종료기간인 2007년보다 4년이나 빠른 2003년에 모든 채무를 갚으며 재기에 발 빠르게 성공했다. ‘믿을만한 제품을 만든다’는 소비자의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위기를 극복한 회사는 기술이 경쟁력이라는 신념으로 완성도 높은 제품 생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손 대표는 ‘5%를 적당히 하면 가격은 50% 떨어진다’는 생각으로 기술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확한 시장분석과 기술력 확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좋은 제품을 싸고 빠르게 만들자’는 경영방침으로 전 직원을 독려하고 있다.
최근 회사는 손 대표의 장남인 손유구 상무가 경영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그 역시 한순간에 일어섰다가 한순간에 망하는 벤처기업과 달리 ‘step by step’정신으로 부딪힐 계획이다.
손 대표는 “임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며 연구하고 노력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며 “이를 위해 품질 경영으로 사전 품질보증 활동의 정착, 품질개선 활동, 품질 마인드 구축 등을 더욱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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