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화된 좁은 영역에서 깊이로 승부”

재정위기 속에서 독일경제가 나홀로 빛나고 있다. 독일은 2010년과 2011년 연속으로 유로존의 2배에 이르는 성장률을 달성한 데 이어 2012년에도 전망치를 상향조정 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전망치를 하향조정하는 모습과 매우 대조적이다. 또한 과거 20년을 통틀어 실업률이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시장도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독일경제의 선전에는 높은 기술력을 가진 제조업이 바탕이 됐다는 데에 별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 원천은 무엇일까?
독일의 전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광업, 건설업 제외)은 22.3%에 이른다. 비슷한 수준의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또한 독일의 주력 수출 품목은 자동차, 기계, 화학 등 고부가가치 생산재 제품들인데 이들의 수출이 GDP의 46.6%에 이른다. 신흥국 수출 증가에 따라 이러한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기 때문에 금융위기 기간 동안 독일의 對신흥국 수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신흥국 제품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제조업은 중소기업(미텔슈탄트: Mittelstand)이 떠받치고 있는데 이들은 독일에만 총 362만개(기준: 종업원 500인 미만, 연간 매출액 5,000만유로 미만, 대기업 지분 25% 미만)로 전체 기업 수의 99.7%, 고용의 78.7%, 기업 매출액의 37.5%, 순 부가가치의 47.3%, 수출액의 20.9%를 담당한다.
하지만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대상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히든챔피언들이다. 헤르만 지몬에 의하면 히든챔피언이란 첫째, 해당 분야 세계 경쟁력 1~3위, 둘째 매출액 40억달러 이하, 셋째 그러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강한 중소기업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히든챔피언이 전 세계적으로 2,000여개, 이 중에서 독일에만 1,200개 이상이라고 하니 그 경쟁력을 숫자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최근에도 독일의 DBM 에너지라는 무명의 벤처기업은 폭스바겐, BMW, 다임러 등 거대 완성차 업체들을 제치고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개발했다. 이 배터리를 이용하여 베를린~뮌헨 사이의 600km 구간을 완주함으로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전기자동차는 향후 10년 내 전체 자동차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배터리 시장은 200억유로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하니 또 하나의 강력한 히든챔피언이 탄생한 셈이다.
히든챔피언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하우스방크 시스템, 마이스터 제도, 중소기업끼리의 연대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법적 지원, 상생의 노사 관계 등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핵심 원천은 전문화된 좁은 사업영역에 집중하면서 높은 기술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전문화·집중화다. 이들은 고객 수를 확대하기 보다는 서비스의 깊이를 깊게 하여 제품, 서비스, 기술, 컨설팅 등으로 소수 고객에게 높은 수준의 상품을 제공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면서도 총매출의 5.9%를 R&D에 투자하는데, 이는 독일 대기업(3.1%)보다 높은 수준이며, 미국 기업 평균에는 20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독일 중소기업의 히든챔피언 사례는 남유럽의 소규모 영세기업들과 비교해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중소기업이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업 생태계와 기업의 전략이 국가 경제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외형적 성장이 성공하는 기업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최근 한국에서도 많은 히든챔피언들이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히든챔피언들이 많이 나와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 강화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종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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