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게 아프면 신음할 힘도 없다. 경제상황이 IMF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된다. 모든 문제가 단번에 풀리기는 어렵다. 시간이 걸린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황개선의 속도보다 방향이다. 경제와 사회, 정치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올 초 5∼6% 성장을 장담하던 정부는 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졌다고 공식적으로 진단했다. 앞으로 투자가 부진하고 노사분규가 계속된다면 올해 3% 성장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는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투자활성화와 수도권 대기업 공장 신·증설 허용 등 규제완화조치, 특소세 인하, 근로소득세 경감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정부는 획기적 내용이라고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지난 10일에는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두 달만에 전격적으로 다시 인하한 바 있다. 금리가 높기 때문에 투자가 움츠러드는 것인가. 세금 때문에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경기침체는 노사문제와 정책불투명 등 정부의 정책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것과 관련이 크다. 이라크전쟁,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북핵(北核) 등에 경기침체 탓을 돌릴 수 없는 것이다.

경기침체 주범 ‘사회 불안’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재의 경기침체원인을 사회불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KDI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사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한번 되돌아보자. 새 정부가 출범한 후 경제 살리기에 주력한 흔적은 거의 없다. 경제주체들에게 ‘경제하려는 마음’을 심어주지 못했다. 코드타령과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개혁만을 외쳤다. 파업과 불법행동이 일상화됐다. 그런 판에 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 아닌가.
한국경제가 활기를 찾으려면 투자와 수출이 늘어나야 한다. 수출이 늘어나려면 싸고 좋은 제품을 계속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은 누가 당부한다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이 나는 곳에 투자한다. 기업에게 투자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앨라배마 주에 공장을 건설했다. 주 정부는 공장 땅을 공짜로 주고 공장건설비도 상당부분 부담했다. 외국기업 유치에 그처럼 적극적인 이유는 일자리 창출 때문이다.

투자 여건부터 조성해야
일자리 창출의 보고인 우리의 중소기업은 어떤가. 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는 판에 중소기업은 신음할 기력조차 없다. 풀려있는 돈은 흔해도 중소기업은 돈 가뭄이다. 일감이 없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거나 외국인 근로자 배정분까지 반납한 기업도 있다. 외국인 근로자까지 감원하는 기업도 생겨난다. 중소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반영하는 사례들이다.
대기업 노조가 임금인상 투쟁을 하면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이 그 부담을 떠맡는다. 하청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몫을 앗아가는 셈이다.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또 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이 임박했다. 중소기업의 부담증가는 관심이 없고 외국인 인권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전국금속노조 산하 100개 중소기업은 임금 삭감없이 주5일 근무를 실시한다고 합의했다. 덜 일하고 똑같이 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의 인건비는 20% 정도 오른다. 기업활동은 손해보면서도 하는 독립운동이 아니다. 이러한 금속노사의 합의가 모든 중소기업에 미칠 파장이 걱정이다. 일손은 모자라고 비용상승은 뻔한데 경쟁력 높이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이래저래 중소기업이 설 땅은 좁아진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은 국민경제의 뿌리’라고 한다. 뿌리를 흔들면서 말이다.
류동길(숭실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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