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의 비즈니스모델은 일정한 대가를 받고 고객의 주문에 따라 건축물을 지어주는 매우 원시적인 형태이며 수천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건설업의 비즈니스 모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은 전 세계 건설시장의 판도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기술력 우위를 내세운 벡텔, 플루어 등 미국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세계 건설시장을 지배했었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프랑스의 빈치, 독일의 호티프, 스페인의 그루포ACS와 같은 유럽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포스트 컨스트럭션 비즈니스’(Post Construction Business), 즉 시공 이후의 비즈니스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건설업은 기본적으로 발주자가 주문한 시설물을 건설해 납품하는 방식이지만 요즘처럼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가고, 도로와 철도, 항만 같은 기반시설이 대부분 구축된 상황에서는 발주자의 주문만 기다려서는 생존과 성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래서 유럽의 선진건설기업들이 기존 사업방식의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포스트 컨스트럭션 비즈니스 모델’이다. 시설물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는 하나 발주자가 건설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을 때 건설사가 자기 돈으로 시설물을 짓고 수십 년에 걸쳐 시설에 대한 사용료를 받아 건설비를 회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 컨스트럭션 비즈니스’에서는 목표고객이 시설물발주자에서 시설물사용자로 바뀌고 매출수익원이 기존의 건설비에서 시설물사용료로 확대된다. 게다가 가치사슬도 기존의 설계, 조달, 시공에서 사업기획, 운영, 유지보수로 넓어지게 되므로 취급하는 상품은 동일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포스트 컨스트럭션 비즈니스 모델’은 최근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라고도 불리며 건설업의 일반적인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내외의 대형 건설사 대부분은 이 방식의 사업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빈치, 호티프가 일반 건설사의 가장 다른 점은 이러한 비즈니스모델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해 사업구조 자체를 바꿔버렸다는 데에 있다. 빈치 등 유럽기업은 ‘포스트 컨스트럭션’을 사업기회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빈치는 시공과 연계된 포스트 컨스트럭션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미 건설돼 운영하고 있는 도로를 적극 매입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운영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프랑스 민간운영 고속도로의 절반이 넘는 4385km를 운영 중이다. 경부고속도로의 총연장이 417km니까, 경부고속도로를 열개 정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빈치의 2011년 영업이익률은 9.9%로 시공위주 건설사들의 평균인 2~3%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그중 무려 77%가 포스트 컨스트럭션 비즈니스에서 창출된 것이다.
빈치가 세계 최고의 건설사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이 시장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장상황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내 건설업체들도 이 상황을 타개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업방식을 뛰어넘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이해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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