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전 세계 콘솔게임 시장을 흔들어 놓은 제품이 있었다. 남들이 앞 다투어 복잡한 조이스틱을 만들어가며 고난이도 게임에 집중하고 있을 즈음, 손에 쥐는 동작 컨트롤러 하나로 ‘몸을 쓰는’ 게임에 승부수를 던졌다. 닌텐도의 ‘위(Wii)’ 얘기다. ‘위’의 흥행은 기어이 닌텐도를 비즈니스위크 선정 세계유망기업 1위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머지않은 2011년, 콘솔게임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던 ‘위’의 실적은 형편없이 곤두박질 쳤다. 닌텐도 본사는 1962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CEO는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히트게임이 없었다”고 자평한 반면, IT 업계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을 원인으로 꼽았다. 휴대폰은 게임콘솔처럼 전자기기이긴 하지만 이종(異種)의 상품이다. 그런데 이 예상치 못한 경쟁자가 고객들에게 게임 앱을 제공하면서 ‘위’가 설 자리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스마트폰에 일격을 당한 닌텐도 역시 2000년 초반에는 엉뚱한 기업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스포츠용품 업체인 나이키는 닌텐도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대응전략을 수립했다고 한다. 바로 주 고객인 젊은 층이 닌텐도 게임에 몰두하면서 야외에서 운동을 즐기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동종(異種) 산업 내에서 따지는 마켓셰어(market-share, 시장점유율)가 무색할 지경이다. 내 밥그릇, 네 밥그릇 지켜주며 경쟁하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
IT의 발달로 산업간 융합이 일어나면서 전혀 다른 산업에서도 경쟁자가 등장하는 ‘異업종 경쟁’이 확산되는 추세다. 이러한 경쟁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 바로 ‘타임셰어(time-share)’, 우리말로 ‘일상점유율’이다. 이것은 우리 상품이 타사 상품에 비해 얼마나 많이 팔렸느냐를 따질 게 아니라, 고객의 시간을 얼마나 길게 점유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고객의 일상에 깊숙이 관여하며 시장판도 자체를 바꾸는 것, 즉 타임셰어를 늘려가는 것이 새로운 경쟁의 양상이다. 테마파크는 쇼핑센터, 프로스포츠리그와 경쟁해야 하고, 다이어트 제품은 김치나 등산복 브랜드의 눈치를 봐야 할 수도 있다. 또 화장품은 고급 스파, 한의원과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경쟁구도를 협소하게 규정해서 이종경쟁을 간파하지 못하는 ‘마케팅 근시(近視)’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이키가 닌텐도를 경쟁자로 인식했던 것 같이 닌텐도가 삼성이나 애플을 가장 위협적인 경쟁상대로 인식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일단 이런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렵다. 異업종 경쟁은 마켓셰어에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경쟁의 판도를 읽기가 힘들다. 심지어 숨어있는 경쟁자를 운 좋게 감지한다고 해도 기존 시장에서의 경쟁역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응전략 수립도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what)을 사는가’보다 ‘왜(why) 사는가’의 시각으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인류학, 심리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고객의 소비맥락을 입체적으로 분석할 줄 아는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제품’ 지향적 사고에서 ‘고객’ 지향적 사고로 전환해야 할 때다.

김병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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