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聞’은 여러번 듣는다는 뜻. ‘百聞一見’은 한번이라도 직접 보는 것이 확실하다는 뜻.
너무나 알려진 말이라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으나 거두절미하고 요점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漢)의 선제(宣帝:BC 74~49)때. 서북 국경넘어 기마(騎馬)민족 오랑캐 무리가 국경지대를 침범해 소란을 피우고 노략질 하자 선제가 조충국(趙充國)이라는 노장(老將)을 정벌군 장군으로 기용하고 작전계획을 물었다. 이때 장군의 답 중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나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옵니다. 작전계획은 현지를 멀리 떨어진 여기서는 적합치가 않습니다. 시급히 현지를 답사 후 작전계획을 짜서 보고 하겠나이다.”
아무리 여러번, 그리고 상세하게 들어도 자기 눈으로 한번 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옳거니…”하고, 선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백문이 불여일견’은 일반적인 해답이다. 그러나 완전한 답은 못된다. 왜냐하면 자기 눈으로 본다해서 모두가 듣는 것 보다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다. 직접 보고서도 못보는 것이 있고,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보았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수도 있다.
‘백문’(百聞)이든 ‘천문’(千聞)이든 ‘문’(聞)은 정보(情報)에 속한다. ‘손자병법’에 의하면 B.C시대에도 정보전(情報戰)이 활발했으나 오늘의 IT시대와는 질·양에서 달랐던 것이 사실이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손자병법의 승리는 태반이 오간(五間)이라는 첩자(諜者)들의 정보활동에 의존했다. 그 중에는 절묘한 정보활동도 많았는데 한가지 사례를 간략히 소개한다.
전국초기 송(宋)나라에 자한(子罕)이라는 재상(宰相)이 송왕(宋王)의 측근시하를 매수해 측근 자신의 생각인양 송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게 했다.
“왕께서 내리신 상(賞)을 받는 관리나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며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 다짐 합니다. 그러나 벌(罰)을 내리시면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이제부터 상·벌을 분리해 상은 왕께서 주시고, 벌은 자한(子罕)재상이 주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옵니다.”
“그것 좋은 생각이다. 즉시 시행케 하라.”
왕은 자기가 왜 그 생각을 못했는가 하는 표정이다.
이래서 관리들과 일반백성에 대한 형벌권(刑罰權)을 장학한 자한(子罕)은 그 권한을 요령있게 휘둘러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됐고, 왕은 허울 뿐인 허수아비로 전락하더니 1년반이 경과하자 마침내 자한(子罕) 일파의 음모로 왕은 모살되고 자한(子罕)이 송나라 왕이 됐다.
오늘 우리는 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이른바 정보시대라 함은 ‘정보의 전쟁화’ 즉, ‘정보’라는 가치를 둘러싼 경쟁이다.
정보홍수 시대에는 기업이 필요한 정보는 봉쇄하는 것이 전략이 기 때문에 진짜 정보는 입수가 어렵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