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화북면은 전국의 면 지역 중 가장 많은 산을 보유하고 있다. 속리산, 청화산, 도장산, 승무산, 청계산, 백악산, 덕기산, 형제봉 등. 거기에 우복동천, 용화동천, 입석동천, 서재동천 등 유명 계곡이 있다. 명산과 명수가 많아 ‘삼산삼수(三山三水)’의 고장이라 불린다. 얼마나 멋지면 계곡마다 ‘동천(洞天,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화북면 상오리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서 시작된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포도밭, 오미자밭이 이어진다. 청정지역에서 자라는 포도와 오미자는 이 지역의 내로라하는 특산물이다. 10여분정도 가면 멋진 장각폭포가 있다. 폭포와 몇 그루의 노송, 금란정 정자가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문인화 한 점이 현실로 살아 나온 듯하다. 장각폭포는 접근이 쉽고 풍광이 빼어나 드라마, 영화촬영 장소로 인기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상오리 7층 석탑(보물 제683호)이 있다. 계단을 오르면 밭 가운데 석탑 한기가 우뚝 서 있다. 속리산을 등지고 밭 사이에 있는,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 높이 9.2m의 7층 석탑은 기단 구성이 독특하고, 각 부의 비례가 불안한 듯하지만, 큰 키에 어울리는 균형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일제 때 일본 헌병이 무너뜨린 이후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78년에 원형대로 다시 쌓았다가 최근에 다시 정밀하게 재복원 했다. 이곳에 장각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다. 탑 주변에 주초석이 여러 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제법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속리산 산행이 목적이 아니니 우복동 코스는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버스 정류장 앞에 상오리 솔숲이 있다. 하늘 향해 쑥쑥 뻗어 올라간 소나무 숲 향기가 싱그럽다. 솔 향을 맡으며 산책을 하면서 정자에서 잠시 숨을 돌리면 된다.
이어 국도 따라 걸으면 화북중학교를 지나치고 화북면에 이른다. 가을이면 포도와 버섯, 오미자가 지천이지만 작은 시골마을은 늘 조용하다. 옛 5일장이 섰다는 슈퍼 옆 장터는 이제는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화북면을 지나쳐 우측편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용유리로 접어들게 된다. 길목에 속리산 시비공원이 있다. 밭과 산, 언덕위에 간간히 시비탑이 만들어져 있다. 가깝게 속리산의 불꽃같은 암봉들이 눈앞으로 다가서는 위치다.
시비탑 지나 더 밑으로 내려오면 비스듬히 누인 바위 동천암(洞天巖)이 있다. 바위에 물 흐르듯 새겨진 글자는 초서에 능했던 양사언(1517~1584년)의 솜씨다. 양사언은 우복동이라는 지명을 함부로 밝힐 수가 없어서 그냥 동천이라고만 쓴 것이라고 전해온다. 우복동은 ‘소의 뱃속 모양의 명당터’를 일컫는다. ‘정감록’에는 우복동을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하나로 기록했고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우복동이 길지 중의 길지로 선비가 머물 만한 곳”이라 했다. 정약용은 ‘우복동가’를 읊었다.
우복동은 예전에는 접근조차 어려운 깊고 깊은 산골이었다. 서쪽엔 백두대간의 속리산 바위병풍에 첩첩이 막혀있다. 북쪽은 백두대간 늘재를 넘어야 괴산으로 연결된다. 상주로 가려면 남쪽 갈령을 넘어야 한다. 고개를 넘지 않는 유일한 관문인 동쪽 문경 가는 길은 가파른 벼랑이 연이어진 쌍룡계곡이 막고 있다. 그래서 우복동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위치였던 것이다.
동천암에서 조금더 내려오면 우복동 녹색농촌체험마을이다. 도로변에 체험장과 숙박동이 있으며 안쪽 마을로 들어가면 성황당, 청화산 등산로가 있다. 봄에는 나물 캐고 여름이면 용유계곡에서 물놀이하고 가을이면 오미자 따고 겨울이면 청화산에 올라 일출 보는 등의 체험꺼리가 있는 마을이다. 이것으로 우복동 걷기 코스는 끝난다. 걷고 나면 무릉도원을 나비처럼 날갯짓 한 듯 기분이 좋아진다.

- 글·사진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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