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무역회사 창업 CEO 꿈 이뤄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해외로 근로자를 보내는 나라였던 한국은 급격한 경제발전 덕택에 이제는 매년 3~4만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들여오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력제도는 1993년 ‘산업연수생제’로 시작해 2004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현재 약 49만명에 달한다. 이에 본지는 고용허가제 시행 8주년을 맞아, 외국인력제도의 질적 성숙을 유도하기 위해 코리안드림을 이룬 외국인 근로자들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에서 제 꿈을 펼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파키스탄인 아쉬라프(30)씨는 금년 3월 창업한 무역회사 M.A. TRADERS의 대표다. 회사는 서울 영등포에 소재하고 있으며, 한국 제품을 파키스탄으로 수출하고 있다. 그는 국내 중소기업에서 6년간 생산직원으로 일했던 외국인 근로자 출신이다.
2004년 2월, 파키스탄에서 대학교를 마친 청년 아쉬라프씨는 고민에 빠졌다. 산업이 낙후된 파키스탄에서 취업하기에는 그의 꿈이 너무 컸다. 자본과 경험이 없는지라 창업도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그런데 그 당시는 한류바람이 파키스탄에도 불던 때였다. 그에게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수만 킬로 떨어진 먼 나라였지만, 심리적으로는 매우 가까웠다. 고심 끝에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한국이었다.
2005년 4월, 1년여의 기다림 끝에 아쉬라프씨는 한국에 근로자로 입국했다. 그의 첫 직장은 경기도 김포에 소재한 대원정밀. 주야 12시간씩 교대로 얼굴과 손이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일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힘들지 않았다. 희망 없는 안락함 보다는, 희망 속에서 고생하는 것이 견딜만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머나먼 이국생활이었지만, 기숙사에서 휴식할 때 케이팝(K-POP)과 한국드라마가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사장도 그의 성실함을 인정해 매년 정기적으로 월급을 올려주었다. 첫 직장이었던 대원정밀에서 그는 꼬박 6년을 일했다.
6년간 한 직장에서 우직하게 일한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업체에서는 숙식비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고 그는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해 1억여원을 모을 수 있었다. 아쉬라프씨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체류기간 종료 후 그는 출입국사무소에 사업비자(D-7)를 신청했다. 친지의 도움으로 사업자금을 추가로 확보했으며 대원정밀 사장의 보증으로 사업비자를 받아 지금의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이 회사가 하는 일은 국내 대기업의 중고 건설기계를 구입해 파키스탄으로 수출하는 무역업이다. 불도저, 지게차 등이 주요 수출품목이다. 지난 3월 창업했지만, 한국에서 일하면서 오랫동안 사업 아이템과 현지 파트너와의 협력에 공을 들인 결과, 올해 순이익은 투자금액의 30%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파키스탄 현지 파트너로부터 주문이 쏟아져 휴일도 없이 일한 적도 많다고 그는 말했다.
“제 청춘을 보낸 한국에서 경제적인 이익보다 더 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파키스탄 청년들도 한국인들의 불굴의 도전 정신을 배웠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아쉬라프씨를 보면서, 1960~70년대 서독과 사우디에서 한국의 미래를 일궜던 산업역군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대원정밀에서 6년간 성실하게 일해서 번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해 한국에서 무억업체 설립에 성공한 파키스탄인 아쉬라프씨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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