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산업에서는 독특하게도 소비자의 니즈보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주도하는 트렌드 즉 유행이 산업을 주도해 왔다. 전통적으로 유명 디자이너들은 1년에서 6개월 전에 트렌드를 선제안하고, 전세계 의류회사들은 그 트렌드에 맞춰서 제품기획과 생산을 시작한다. 게다가, 패션 산업은 그 유통과 판매단계가 복잡하고, 단 3-4개월 이월된 상품의 가치가 50~70% 이상 급격히 떨어져 높은 재고 위험을 내재한다. 그래서, 의류 제품의 가격은 보통 원가의 5배에서 50배까지 높게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소비자는 자신의 니즈가 반영되지 않은 제품을 비싼 가격에 구매해야 하고 의류업체 역시 유행 예측이 빗나갈 경우 높은 재고 비용을 떠안게 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등장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인 패스트패션은 소비자와 기업 양쪽의 불만을 모두 해소해주며 의류 시장을 제패하게 되었다. 그 성장률은 명품 브랜드의 매출증가율의 3배에 달하는 21%에 달하며 사양산업이라던 패션산업 내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Zara와 H&M은 ‘소비자의 니즈에 반응’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곳에 집중한 차별화된 비지니즈 모델을 추구하여 업계1,2위를 차지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두 기업은 ‘fast(빠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비자 니즈에 최대한 빠르게 반응하기 위해 기획에서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全가치사슬을 수직-통합한‘Quick response SCM(신속대응 공급망 관리)’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기존에 6개월에서 1년에 달하던 생산주기를 2~5주 수준으로 단축했다. 그래서, 그들은 선도 디자이너들의 트렌드에 의존하기 보다 소비자의 구매량과 니즈를 반영해 즉각적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량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백화점이나 대리점 같은 복잡한 유통체계를 없애고, 대형 직영매장에서만 상품을 판매해 유통마진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 뿐 아니라,‘목표고객‘을 로컬소비자에서 글로벌소비자로, 특성 세분시장에서 전체 라이프스타일로 확대해 얻게 된‘규모의 경제’의 효과를 통해 원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이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의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게 된다.
한편, 동일한 목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두 기업은 자신의 태생적 장점을 반영한 특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한다. 태생적으로 생산자(manufacturer)인 자라는 전 세계 생산량의 60%를 책임지는 공장과, 모든 물량이 한 데 모이는 물류센터를 본사가 직접 소유해 강력한 수직-통합을 추구하여 평균 약 2주의 업계 최고로 빠른 생산주기를 구현했다. 반면, 태생적으로 판매업자(retailer)인 H&M은 전 물량을 아시아, 유럽 등지의 20여개국 700여개 공장에서 100% 아웃소싱으로 조달하여 자라보다 느린 평균 3~5주의 생산주기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Zara는 유행에 민감한 제품으로 전체 물품의 60%이상 구성하고 비교적 높은 가격을 부여한 반면, H&M은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베이직한 디자인의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대신 최저가를 보장한다. 전 세계 의류시장을 재편하고 있는 패스트 패션, 그 원동력은‘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한다’ 는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킨 것이었다. 그 속에서 최고를 달리는Zara와 H&M은 각 사의 태생적인 강점에 집중해 자신들만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기본’과 ‘응용’을 함께 추구한 것이 성공의 열쇠였던 것이다.

양수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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