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요 ‘정체’… 투기적 불안요인은 여전”

올 하반기 들어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전환됐다. 2012년 국제유가는 1/4분기 이란사태로 급등했다가 2/4분기에는 유로존 위기 등의 영향으로 급락했던 것이 하반기 들어 재상승하는 흐름이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부진이 계속됐기 때문에 실물수요 측면에서의 상승압력은 크지 않다.
무엇보다도 세계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신흥국경제의 성장둔화가 본격화되면서 석유수요 역시 증가세가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반기 들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2012년 하반기 국제유가의 재상승은 유동성 증가나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비수급 요인의 영향 때문이다. 따라서 2013년 유가의 향방을 확인하기 위해 실물 수급 요인과 더불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비수급 요인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석유수요는 경기, 그중에서도 제조업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제조업지수는 여전히 바닥수준이고, 주요국의 산업생산 증가율 역시 2012년 들어 크게 하락하고 있다. 2013년에도 본격적인 회복은 어려울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전 세계 석유수요의 증가세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공급 요인이다. 이란 사태 때문에 석유공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석유공급은 충분한 수준이다. 2012년 전 세계 석유공급 증가율은 전년 대비 2.8%로, 수요 증가율(1.0%)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OPEC이 리비아 사태와 이란 사태에 대응해 증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급측면만 보면 2013년 전망도 나쁘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같은 OPEC 산유국뿐 아니라, 미국 역시 증산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비수급 요인 중 첫 번째는 투기수요다. 2012년 하반기 유가상승을 견인한 것도 투기수요다. 2012년 6월 전후로 유로존 위기가 다소 완화되면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선됐다. 2012년 8월 이후 달러가 약세로 돌아선 점 역시 원자재에 대한 투자심리를 개선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WTI유에 대한 투기거래는 2012년 6월말 11만 3천 건 정도였으나 9월말에는 23만 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2012년 9월 3차 양적완화(QE3)를 발표한 만큼 추가적인 유동성 증가도 예상된다.
이렇게 유동성이 확대되면 실물투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석유 같은 원자재의 인기가 치솟게 된다. 달러 약세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위험을 헷지하려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1차 양적완화 이후 국제유가는 최대 83.1%, 2차 양적완화 이후에는 32.7% 상승했다. 이런 정도까지의 상승은 아니더라도, 유동성 증가로 인한 투기수요 증가는 국제유가의 상승세를 지속시킬 것이다.
비수급 요인 중 두 번째는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이다. 2011년 MENA 사태와 2012년 이란 사태로 중동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3년 국제유가는 실물수급 요인의 하락 압력에도 불구하고 비수급 요인의 강력한 상승압력으로 인해 2012년과 유사한 수준의 고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2년 10월 현재, 주요 37개 글로벌 투자은행이 전망하는 2013년 브렌트유의 가격은 1배럴당 111달러로, 2012년 예상치인 112달러와 유사한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은 이렇게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투기나 중동 리스크 같은 비수급 요인으로 인해 고유가가 지속되면 이중의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변수인 중동정세와 국제유가 흐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한다.

김화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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