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가을 일교차가 큰 덕분에 단풍이 고왔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사진이나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뱅글뱅글 돌았다. 치악산 상원사에 가야겠다고 결정한 것에 큰 이유는 없다. 단풍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치악산이니 그곳도 핏빛 단풍이 있을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다.

가는 길에 우선 성황림에 잠시 차를 멈춘다. 성황림 주변으로도 곱게 단풍이 들었다. 이 일대는 천연기념물(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각종 수목이 울창하며 동식물 조사자료에 의하면 식물 643여종, 동물 48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지만 주민들이 아니고서는 출입금지다. 신령스러운 곳이기 때문이다. ‘신이 사는 숲’이라 해서 ‘신림’이라는 지명이 붙었을 정도다. 이곳에도 곱게 단풍이 들었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차가 갈 수 있는 임도를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간다. 사람들이 많은 만큼 안쪽에도 주차공간이 없다. 그걸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등산채비를 단단히 하고 천천히 산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스님들이 이용하는 주차장에서 2.5㎞는 걸어야 한다. 상원사까지 산행은 이번이 4번째다. 1100m에 위치하고, 걸어야만 되는 곳이기에 쉽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은 곳이니 늘 큰 마음다짐을 해야 한다.
길은 한없는 오름길이다. 걷는 동안 핏빛 단풍 숲을 스쳐지나간다. 그런데 웬일인지 계곡속 물줄기가 아주 가늘다. 가을 가뭄인 듯하다. 물길이 나뭇잎에 가려져 더 그렇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계곡이 빛을 잃어버리면서 자연 풍치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초행자의 눈에는 분명코 아름다울 것이다. 숨이 턱턱 차오르고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산행이라는 것은 이렇듯 늘 익숙해지지 않는다. 무념무상 머리를 비웠다. 이미 여러번 가본 곳이니 목적지의 기다림도 없다. 그러다보니 훨씬 걷는 일이 수월해진다. 두어시간을 올랐을까? 드디어 산허리에 사찰이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낸다.
용마암이 먼저 눈길이 잡아끈다. 파란 빛의 강렬한 하늘과 동종각, 계수나무, 바위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상원암을 잘 표현하고 있다. 조금더 올라가 사찰 바로 밑에 있는 약수로 다가선다. 물은 실타래처럼 가늘다. 이어 일주문을 만난다. 입구가 훤해졌다. 그동안 중창불사를 한 듯하다. 약숫물이 넉넉한 사찰에서 목을 축이고 나서 계단을 따라 대웅전 경내로 들어선다.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인파를 비껴 사찰 뒤켠으로 올라 사찰을 한눈에 내려다본다. 넓게 펼쳐진 붉게 물든 치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와 시원하다.
이 산꼭대기에 건물 짓는 일은 묻지 않아도 힘들 일이다. 지난해(2011년)와 올해에 걸쳐 몇 개의 건물들을 중창불사 했단다. 이곳에 거한지 3년째. 사찰도 독립으로 운영되어야 하기에 경영난고를 접했단다. 시주 하는 사람이 줄어든데다 그 전에 있는 25년 주지승이 신도를 다 몰고 내려가 버렸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이렇게 돈이 필요하다. 어쨌든 하늘 밑에서 펼쳐지는 산사 음악회는 한번쯤 참여해보고 싶다.
경내를 다시 한번 꼼꼼히 둘러본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여 관법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전해온다.
이 사찰이 빛나는건 은혜 갚은 꿩의 전설이다. 이미 교과서에서도 실려 다 알만한 내용. 그리고 용마바위로 가본다. 40m나 되는 벼랑끝. 위험스러운 듯 밧줄로 금줄을 쳐 놓았다. 이곳 바위에는 말발자국 형태로 패인 곳이 선명하며 그 밑에 핏빛이 변한 갈색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한때는 핏빛이었으나 중창불사 후에 그 빛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바위에 새겨진 말문양은 감악산 백련사와 이어지는 전설을 담고 있지만 지독하게 통속적이다. 그래도 용바위는 상원사를 빛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 언제 이곳을 다시 오게 될지 기약할 수 없다. 아쉬운 마음을 접으면서 하산한다.

■여행정보
○ 찾아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이용 → 신림 IC로 나서 88번 지방도 이용. 영월, 주천방향으로 좌회전 → 팻말따라 좌회전 → 성황림 → 성남 매표소

글·사진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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