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5는 미 공군의 F-16, 미 해군의 F-18 등 현역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해 록히드마틴이 개발하고 있는 신예 스텔스 전투기이다. 이 기종의 실전배치는 당초 2010년으로 기대됐지만, 여러 결함이 발견돼 2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문제는 이 전투기에 탑재된 소프트웨어였다.
흔히들 이런 제품에 결함이 있다고 하면 기계적 결함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히려 하드웨어의 결함은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지만, 1000만 라인에 이르는 방대한 소프트웨어의 결함은 발견도, 해결도 어려워 모두의 무릎을 꿇게 만들고 있다.
이제는 하드웨어만 잘 만든다고 우수한 제조기업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하드웨어를 더욱 잘 제어해 제품 본연의 가치를 높여주는 소프트웨어 융합까지 능란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품질의 소프트웨어를 적시에 개발하고 다양한 제품에 접목시키는 소프트웨어 융합역량이 필수적인 핵심역량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이런 소프트웨어 융합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은 날로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는 대규모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고급인력을 육성하는 것이다. 건축에서도 아름다우면서도 쓸모 있는 건물을 만드는 건 매우 어렵다. 심미안과 구조 전반에 대한 지식을 겸비한 유능한 전문 건축가가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분야도 마찬가지로 현장의 니즈를 충족하면서도 구조적으로 개발과 유지보수가 쉽도록 설계하는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라는 직군이 따로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단순한 프로그램 코딩 인력들이 상당수고 이러한 고급인력은 크게 부족하다.
용도에 맞는 유연한 소프트웨어 개발조직을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연구에 의하면 소프트웨어 성격과 개발조직 구조 사이의 동질성이 높아야 성과도 높다고 한다.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 개발팀과 단단히 결속돼야 하고, 다른 제품과의 연계가 중요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재량권이 큰 독립 사업부나 자회사가 유리하다.
또한 유능한 소프트웨어 인력이 계속 근무할 매력을 느끼는 직능관리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업계 종사자들의 큰 절망감은 단순 IT 서비스 인력으로 취급 받는 현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고급인력들은 컴퓨터공학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현장과 소통할 수 있는 보다 폭넓은 감각이 겸비돼야 한다. 현장에서 훌륭한 멘토와 일 해보며 경험을 축적하고, 다른 부서에 파견돼 다양한 관점을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 등이 고루 주어져야 한다. 선진 기업들은 그런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임직원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성장하는 기쁨을 준다.
더욱 험난해지는 경영환경 속에서, 그간 한국의 수출과 성장을 견인해온 제조업에도 빨간 불이 들어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제조업은 질적인 도약을 이뤄낼 수 있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소프트웨어 융합에 있다.
이제까지 정부와 업계가 소프트웨어 융합역량의 강화를 외쳐왔지만, 아직 실질적인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는 않은 상태이다. 이제는 정부의 지원과 척박한 환경 탓만 해서는 곤란하다. 글로벌 역량을 갖춘 한국의 제조기업들부터 절박한 심정으로 나서서 소프트웨어 융합역량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
그 결과 불모지에서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우뚝 선 제조업의 신화가 소프트웨어 융합에서도 나타날 때, 한국도 진정한 제조강국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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