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기후로 강수량이 풍부한 동남아지역에 세계적인 물부족 국가가 있다. 바로, 싱가포르 이야기이다. 싱가포르는 강수량은 많지만 국토 내에 강과 호수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고, 국토가 좁아 저수공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가용 수자원량은 세계 평균의 1/53 수준에 불과하다. 자체적으로 빗물을 모아 활용할 수 있는 수자원량은 총 수요의 20%에 불과하다보니, 말레이시아로부터 총 물수요의 40%에 해당하는 원수를 송수관을 연결해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오랜 시간의 연구개발과 투자를 통해 현재는 하폐수 재이용수와 해수담수화로 수자원의 40%를 보충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싱가포르 물산업 발전이라는 결실이 맺어지기도 했다. 특히 싱가포르 물기업들은 긴 역사와 규모를 갖춘 구미 기업들이 즐비한 글로벌 물시장에서 분야별 상위권에 진입했으며, 다양한 규모와 사업영역을 가진 많은 기업들이 활발한 해외 시장 진출로 글로벌화에 성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이플럭스, 셈콥, 다코 워터 등은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물기업들이라 할 수 있다.
하이플럭스社는 1989년 창업 이래 전세계 400개 지역에서 약 1,000여개의 프로젝트 실적을 달성하며 해수담수화분야의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도약했다. 하이플럭스사의 성공비결은 단연 기술력이다. 첨단 수처리 기술의 핵심인 멤브레인을 자체 개발하여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뛰어난 멤브레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산업용 수처리, 재이용 수처리, 해수담수화 등 기술집약적 고부가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싱가포르 최대 수처리 기업인 셈콥社는 수처리량 기준으로 세계 6위 규모의 물기업이다. 종합 엔지니어링 기업인 셈콥이 글로벌 물 기업 강자가 된 비결은 바로 독특한 마케팅 전략, 번들 마케팅 덕이다. 셈콥은 주로 대형 산업시설에 필요한 수도, 전기, 가스 등 각종 유틸리티를 한꺼번에 제공해주는 것이 강점이다. 고객 입장에서 한번에 모든 유틸리티를 해결할 수 있는 반면, 셈콥 입장에서는 유틸리티의 수주 실적이 늘어나면 다양한 수처리 기술을 활용하는 테스트 베드도 많이 확보할 수 있고, 물 사업 실적도 동시에 증가하니 일석 삼조의 효과인 셈이다.
다코 워터社는 매출 5~6백억원 수준의 물 전문 중소기업이지만, 매출의 93%가 아시아 신흥국에서 발생하는 글로벌 회사다. 베테랑 수처리 엔지니어 출신의 CEO가 1999년 설립한 다코 워터는 대만, 말레이시아 등 5개국에 진출해 있다. 대형 물기업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 소규모 산업시설에 필요한 정수와 하폐수 처리의 시공과 운영 부문, 신흥국의 중소규모 하폐수 처리시설 등이 주요 타겟 시장이다. 수처리에 필요한 핵심 소재와 부품은 외부에서 조달하되, 대신 자체 조립을 통해 고객 요구에 맞도록 최적화된 수처리 시스템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스터마이징에 강점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 물기업들은 좁은 내수시장, 짧은 업력 등 열악한 조건에서 글로벌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물기업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한국 물기업들도 내부의 축적된 기술과 사업 역량을 최대한 활용한 독창적인 글로벌 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수주 규모 등 외형적인 실적만을 추구하기 보다 진출 국가 내에서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키우고 확산시키는 등의 싱가포르 물기업들의 전략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하주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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