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벽두에 세계경제는 미국의 재정절벽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는 소식에 안도했다. 하지만 미국경제를 위협하는 것이 재정절벽만은 아니다. 재정절벽에 버금갈 큰 위협은 바로 통화절벽(monetary cliff)이다.
통화절벽은 지금 미국 중앙은행인 FRB가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정책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양적완화정책은 쉽게 말해서 돈을 푸는 정책이다. FRB는 금융위기 이후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렸지만 아직 경제가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고 있는 것이다.
FRB는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했고 2012년 9월에는 3차 양적완화정책을 발표해 경제가 상당히 개선될 때까지 매달 400억달러의 주택저당채권을 무기한 매입하기로 했다. 12월에는 2012년 말로 종료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대체해서 매월 450억달러의 국채를 추가로 매입하겠다는 추가 양적완화정책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이 2012년 말로 종료되면 장기채권 수요가 줄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추가 대책을 수립한 것이다.
돈을 푸는 방법은 시중에서 채권을 사들이는 것이다. 채권 수요가 늘면 채권의 가격이 올라가고 금리는 떨어지며, 채권을 판 금융기관들은 더 많은 현금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금융기관은 대출에 나설 것이고 기업이나 가계는 싼 금리로 돈을 빌려 투자나 소비를 할 수 있어 경기가 살아날 것이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변해서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늘리기 시작하면 상황을 크게 달라질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소위 신용창조라는 반복적인 대출을 통해 FRB가 공급한 통화를 몇 배로 부풀려 시중에 공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고 FRB는 가장 중요한 목표인 물가안정을 위해 통화공급을 줄여야 하는데, 이때에는 양적완화정책과는 반대로 채권을 매각해 시중자금을 거둬 들이는 절차를 밟게 된다.
FRB가 보유한 채권을 팔기 시작하면 금융시장에서는 채권의 공급이 늘어나 채권가격이 떨어지고 금리는 오를 것이다. 금리 상승은 당연히 투자나 소비를 위축시켜서 경기회복 동력을 꺾게 된다. FRB가 가진 채권이 많으면 많을수록 매각해야 할 채권 규모도 늘어나고, 따라서 FRB의 정책 변화가 시장과 경제에 미칠 충격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금과는 반대 방향의 통화정책, 즉 양적완화가 아니라 채권을 매각하고 통화를 환수할 때 미국경제가 받을 충격이 통화절벽이다.
통화절벽이 지금 당장 미국경제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아직 성장활력이 미약해서 수요도 부진하고 물가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여건을 핑계로 채권 매입을 늘리는 동안 앞으로 닥칠 위험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필요한 때가 되면 통화량과 물가를 관리할 수 있다는 낙관적 주장도 있지만, 현실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적완화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미국경제가 직면한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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