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집중해가며 봤던 TV 시리즈 중 ‘맥가이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주인공인 맥가이버가 적에게 붙들려 감금되거나 밧줄에 묶인 채 깊은 폭포 속으로 내던져지는 등 긴박감 넘치는 상황이 끊임없이 연출되곤 했는데, 그런 위기 때마다 주인공은 기상천외한 발명품을 뚝딱 만들거나 꽁꽁 묶인 밧줄을 단번에 끊어내고 탈출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등장하던 만능 도구처럼 보였던 제품이 있다. 바로 우리에게는 ‘맥가이버 칼’ 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빅토리녹스 기업의 ‘휴대용 멀티 칼’이다.
빅토리녹스는 올해로 129년을 맞는 대단한 장수기업으로, 등산 가방이나 여행 시 자동차 안, 또는 집안의 공구상자 등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하나쯤 지니는 필수품으로 변함없는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칼 에스너 회장은 빅토리녹스의 성공비결을 묻는 언론과의 인터뷰마다 공통적으로 강조해 온 부분이 있다. “성장과 지속성 중에 더 중요한 것을 고르라면 우리는 주저 없이 지속성을 고를 것이다”라는 말이다. 고속성장을 꿈꾸기보다는 스위스 내에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처음의 약속을 기억하며 견실한 성장을 최고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공장을 짓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국에서 만든 제품만 이 스위스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2005년 동종업계의 오랜 경쟁사 벵거(Wenger)를 인수한 것도 스위스의 제품이 해외에서 생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업 철학은 브랜드 슬로건과 일관된 품질력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고객 삶을 위한 동반자(Your companion for life)’를 기치로 최상급 철만을 사용하고 있다. 모든 칼은 록웰(RC) 이라는 단위로 강도를 표현하는데 빅토리녹스의 모든 칼은 타사 제품이 모방하기 어려운 수준인 56 록웰 이상의 높은 강도를 반드시 유지한다고 한다. 또한 전체 직원의 무려 10% 이상이 검수 작업에 투입돼 불량률 0% 대를 견지하고 있기도 하다. 수십년을 사용한 제품이라도 무상 AS 원칙을 준수하는 것도 고객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확보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빅토리녹스의 우량 장수를 이끄는 또 다른 요인은 ‘채용’에서 한걸음 나아가 ‘고용유지’를 위한 남다른 노력을 꼽을 수 있겠다. 2001년 빅토리녹스는 창립 이후 최대의 시련을 겪었는데, 바로 미국의 9.11 테러사건으로 인한 매출 급감 위기였다. 9.11 테러 이후 각 공항에서 포켓용 칼의 기내 반입이 금지됨에 따라 신규 수요가 급감했고, 전체 매출 중 30%를 차지하던 면세점 채널이 완전히 막혀버리게 된 것이다. 이때 빅토리녹스는 고용 불안감이 품질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고용 유지에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위기 시에 형성된 직원들의 긍정적 마인드와 유대가 현재 빅토리녹스를 건재하게 만든 최고의 자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007년 아들에게 4대째 가업을 승계한 아버지 칼 엘스너 3세는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매일 회사에 출근한다고 한다. 자녀의 성장을 더 오래 지켜볼 수 있는 것이 한 개인이 장수하면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듯, 기업과 고객의 성장을 더 오래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한 기업이 장수하면서 누릴 수 있는 더할 수 있는 기쁨이 아닐까.

이민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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