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선진국 갈등으로 어려운 한해 될 듯

새해가 밝았지만 금융위기의 후유증과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경제의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다. 세계경제를 짓누르던 위기감은 다소 진정됐어도 아직 성장활력이 미약한 가운데 재정긴축이 지속되면서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성장 속에서 경제나 재정 상황이 다른 국가, 계층, 지역들이 기존의 룰이나 관행을 벗어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에 따라 다발적인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한편, 금융위기 발생 직후 G20 체제를 통해 정책공조를 추진하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각국이 처한 경제상황이 상이해서 공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국가, 기업 등이 스스로 위기 극복을 도모하는 각자도생에 나설 것이다.
먼저 선진국은 재정긴축이 성장을 억누를 것이다. 연금 삭감, 임금 동결, 구조조정 등의 고통을 수반하는 긴축정책에 대한 반발이 크지만 유로존과 미국 등은 긴축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계나 기업 모두 활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긴축이 실물경제를 지속적으로 압박해 저성장이 장기화될 것이다.
세계경제는 예상치 못한 극단적 위기 상황인 ‘블랙 스완’의 시대에서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지만 대응할 수단도 마땅치 않은 ‘그레이 스완’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재정이 어렵다 보니 선진국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양적완화정책을 더 강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2012년 9월과 12월에 추가적인 양적완화조치를 발표하면서 경제가 상당히 개설될 때까지 기한 없이 매월 850억 달러의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매입하고 있고, 유럽 역시 자산매입을 확대할 전망이다. 일본도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여 양적완화정책의 강도가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양적완화정책은 재정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환율갈등을 촉발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글로벌 환율갈등은 장기화되면서 자본시장과 통상으로까지 파장이 번질 우려가 크다.
또 재정난에 시달리는 선진국들은 막대한 이익에 비해 세금납부액이 적은 글로벌기업에 대한 비판 여론을 등에 업고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등 글로벌 기업의 절세전략에 제동을 걸고 있다. 또한 담합이나 특허남용 등에 대해서도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글로벌기업 규제가 新경영리스크로 대두할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세계의 소비 및 투자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통상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다. 집권 2기를 시작하는 오바마 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강력히 추진하고, 새 지도부가 출범한 중국은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지렛대 삼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맞서면서 본격적인 통상주도권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제조업에서는 지원정책이 더욱 강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모바일산업에서는 주도권 쟁탈전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영토분쟁으로 홍역을 치렀던 동북아는 중국의 5세대 지도부 출범과 일본의 자민당 집권 등으로 정치지형이 바뀌어 불확실성이 커졌다. 영토문제는 양국이 모두 타협 불가를 외치고 있어 충돌위험이 여전히 잠복해 있지만 전면적 대결보다는 견제와 함께 실용 추구를 병행하는 외교 행보를 통해 갈등 완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은 정정불안이 더 커질 전망이다. 이란이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란 핵문제 협상은 지연되고, 시리아 내전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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