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믿은 인도의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 젊은이는 스탠포드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를 타고 고향인 뭄바이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면서도 곧 다시 대학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그 후 30년간 스탠퍼드를 찾지 못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4형제 중 막내인 그 청년을 후계자로 지목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회사 상황은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아버지의 회사는 연 매출 150만 달러 정도의 작은 식용유회사였는데 가뜩이나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처지에 최고경영자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거의 파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40여년 후, 이 회사는 매출이 70억달러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 됐다. 파산 직전이었던 회사를 기사회생시킨 이 청년이 바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인 ‘위프로(Wipro)’의 회장 아짐 프렘지다. 기업경영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던 청년이 어떻게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을 만들 수 있었을까?
프렘지가 사업을 물려받았을 때 가장 반발한 것은 주주들이다. 그가 참석한 주주총회장은 경영진에 대한 성토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는 주주들의 우려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마음먹었다. 부족한 경영지식을 채우기 위해, 낮에는 사업을 돌보고는 밤에는 기업을 경영하는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필요한 책을 추천받아 읽기도 했다.
아짐 프렘지는 기업가 중에서도 별종으로 통한다. 2006년 ‘포춘’에서 인도 최대의 갑부로 선정될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이면서도 비행기는 이코노미석을,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고, 자동차는 아반떼급의 차를 타고 다닌다. 그는 정경유착이 심한 인도에서 정부에 정치자금을 일절 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회사를 맡았을 당시에는 인도 정부의 부정부패가 더욱 심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프렘지는 부정부패 없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어떤 부정부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어긴 직원들에 대해서는 중징계로 대응했다. 물론 프렘지도 뇌물을 요구하는 관리나 고객들과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랜 기간 추진해 온 그의 윤리경영은 이제 국민과 다른 기업들의 신뢰로 이어져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인도 남부의 벵갈루루 지역은 위프로가 컴퓨터 공장을 세우기 전에는 날씨 좋은 휴양지에 불과했다. 프렘지는 그런 곳에 최초로 투자하고 IT바람을 불러일으켜 ‘인도의 실리콘벨리’로 만들었다. 이런 기적의 사업가 프렘지가 이제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인도 초등교육 개선을 위해서 2001년 사재 5000만달러를 들여서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2010년 12월에는 추가로 자기 재산의 8분의 1인 20억달러를 기부했다. 그가 이렇게 거액의 재산을 초등교육을 위해 쏟아 붇는 이유는 ‘인도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초등교육’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프램지는 인도의 열악한 교육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다시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도전하기로 했다. 바로 교육을 통해 빈곤의 악순환을 해결하겠다는 꿈이다. 사업을 통해서 기적을 일으켰던 프렘지가 이제 기부를 통해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홍현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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