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마을을 여행한다면 섬 기행도 생각해봄직하다. 섬이란,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곳이라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무거운 짐을 짊어진 듯 발길 닿기가 쉽지는 않다. 통영에서 제법 많은 섬들을 다녀왔다. 하지만 통영 바다에는 526개의 섬이 있고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44개라는데, 아직도 가볼 섬은 아직도 많다. 그중에서 많이 알려진 곳이 욕지도다. 통영항보다 조금 빨리 도착한다는 삼덕항에서 출발한다.

욕지도행 페리호는 시설이 잘 되어 있다. 배를 깔고 누울 수 있는 곳과 의자가 따로 있으며 매점은 물론 노래방까지 갖추고 있다. 이상한 것은 관광객에게 길들여진 갈매기 떼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갑판에 배를 깔고 생각해본다.
욕지도(欲知島). 이름이 너무나 강렬해서 한번 들어도 절대 잊지 않을 것 같다. 설마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욕이라는 비속어는 절대 아니겠지. 자료를 찾아보면 백여 년 전 한 노승이 섬 동쪽에 있는 연화도의 상봉에 올랐다.
시자승이 “스님, 어떤 것이 도입니까?” 하고 묻자 노승은 “욕지도 관세존도(欲知島 觀世尊島)”라고 답하며 욕지도를 가리킨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불가에는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이라는 말이 있단다. “연화세계를 알고자 하는가? 그 처음과 끝을 세존께 물어보라”는 뜻이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참으로 어려운 섬 이름이다. 아주 쉽게 해석하자면 욕지도(慾知島)는 ‘알고자 하는 의욕의 섬’으로 풀이된다. 조선 초기에는 ‘욕질도(欲秩島, 褥秩島)’라고 했고, 중기에는 ‘욕지도(欲智島)’와 ‘욕지도(欲知島)’로 혼칭되었다고 한다.
통영에서는 욕지도, 연화도, 두미도, 세존도를 ‘연화열도’라고 지칭한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천상을 꿈꾸고 살았다. 그래서 쉽게 다가오지 않은, 아련한 곳의 섬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꿈꾸지 않았을까? 그 연화열도 중,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 욕지도다. 선착장이 있는 동촌항. 면소재지가 있는 곳으로 섬에서 가장 크다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섬과 별다르지 않다. 바닷가 주변을 에둘러 횟집, 민가가 있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골목이 깊지 않게 이어진다.
일단 해안으로 난 길을 에둘러 보기로 한다. 섬을 한 바퀴 에둘러 볼 수 있도록 둥글게 17km의 아스팔트 길이 이어진다. 일주도로가 미치지 않는 동쪽의 야포와 통구지 방면의 막다른 길까지 다녀오면 해안도로 총 길이는 35km 정도다. 순환코스지만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이 좋다. 남쪽 해안이 경치가 좋아서 이곳부터 먼저 보는 게 기본이다. 여객선터미널에서 왼쪽 방향으로 부두 길을 따라 1km 가면 목넘이 삼거리다. 우회전하면 바로 언덕길이 시작되고 천황산 중턱의 해발 100m 정도까지 올라서면 길은 평탄해지면서 항구에서 고갯길로 넘어서면서 잠시 차를 멈추게 된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탁 트인 바다 밑으로 동천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그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떠 있다. 두미도, 상노대도, 하노대도, 우도, 연화도 등 9개의 유인도와 30개의 무인도. 그 섬 지명을 다 알지는 못할지라도, 그저 눈 속, 가슴 속까지 깊게 새겨진다.
다시 길을 나서면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해안의 모습도 남다르다. 멀리 펠리컨 바위가 보이고 그 뒤쪽으로 숨겨진 듯, 살짝 보이는 섬이 연화도다. 전망대에는 밀감을 파는 아낙이 있다. 제주에서만 생산되는 줄 알았던 밀감이 욕지도에 있다. 그 이유는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가 1968년 토질을 조사한 후 시험 재배하면서부터란다. 노지에서 나는 욕지도 밀감은 수분이 많고 단맛보다는 새콤한 맛이 강렬하다. 욕지도 감귤은 제주도보다 앞서 있다.
조금더 밑으로 내려오면 또다른 삼여 전망대가 있다. 바닷가에 세 개의 바위가 선명하다. 그래서 삼여도라 붙여진 듯. 삼여도에 얽힌 전설에는 용왕의 세 딸이 있었는데 이무기가 변신한 젊은 총각을 서로 사모하자 대노하여 세 딸을 바위로 변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곳에는 1977년 영화 “화려한 외출”을 찍었다는 촬영지 표지판이 있다. 그 오래전, 이곳에 와서 촬영을 했고 섬 근처까지 갔단다. 그리고 그 삼여도 옆에는 민가도 있었다는 것이다. 조금도 내려오면 고옥이 한 채 있다. 고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륵도 살인사건’이라는 영화의 세트장이라고 한다. 바로 위에 교회가 있는데, 멀리 반도 끝에 튀어나온 바위를 ‘중바위’라고 한단다.
그러면서 유동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길은 우측으로 휘유동 바다에는 참치 양식장이 많다. 그동안 원양어업으로 먹었을 것이라는 참치를 이곳에서 양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욕지도는 어업이 발달했는데 특히 멸치의 주산지였다. 솔가지에 불을 켜서 멸치를 유인한 뒤 잡는 챗배 멸치잡이가 욕지도의 전통 어법이었다.
일제 때는 고등어, 전갱이 등으로 풍어를 이루었고 남해안의 어업전진 기지였다. 당시 욕지도에서 잡힌 물고기들은 서울, 마산, 일본, 만주 등지로 수출됐다고 한다. 지금 욕지도는 돔, 우럭 등의 가두리 양식장을 많이 한다. 또 욕지도에서는 처음으로 고등어 양식이 시작되어 성공한 곳이다. 그래서 욕지도에서는 살아있는 고등어회를 맛볼 수 있다.
해안길은 덕동과 도동해변을 잇는다. 이후 섬의 서북단인 솔구지(대송) 근처에 이르면 또 하나의 천황산(467m)을 솟구친 두미도와 상하 노대도가 지척으로 보이고, 길은 섬의 북면으로 접어든다. 솔구지를 지나면 길은 차츰 바닷가로 내려서는데, 이후 동촌 부두까지는 평이한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그리고 원점 동천항을 만난다. 해안드라이브를 끝내고 나서는 섬 동쪽, 노적~통구지 방면으로 가면 된다. 목넘이 삼거리에서 언덕 위에 올라서면 통구지 방면으로 대단한 해안절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발밑의 노적해수욕장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 막다른 길이다. 길가에는 욕지도의 천연기념물인 메밀잣밤나무(천연기념물 제343호)숲이 있다. 그렇게 욕지도 여행이 끝이 난다. 등산을 좋아한다면 욕지도의 최고봉인 천황산(392m)을 오르면 된다.
눈이 시릴 정도로 맑고 깨끗한 바닷물이 조화로운 곳이다. 또 하나 눈에 띄게 펜션이 많은 것도 이 섬의 특징이다. 하지만 산행이나 낚시가 목적이 아닌 사람에게는 욕지도는 해안 드라이브 이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 문화재나 사찰등도 없어서 그저 한적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해안을 감상하는 게 전부다.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색과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곳도 드물 일이다. 고구마 수확철에 오면 또 다른 풍치를 보게 되지 않을까?

■여행정보
○찾아가는 방법 : 통영항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 이용. 1시간 10분 정도 소요. 선명→나폴리호(055-645-3717) 선명→욕지호(055-643-6771), 선명→금영호(055-643-8973)가 있다. 또는 욕지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은 삼덕리항(055-641-3734, 미륵도 산양읍)이다. 50분 정도 소요. 모두 자동차를 실을 수 있는 카페리다.
○별미집 : 큰 마을과 바닷가에 식당이 다수 있다. 항구 주변으로 횟집들이 다수 있다. 그중 해녀 김금단 포차(055-643-5136)이 괜찮다. 상호처럼 주인은 해녀다. 제주가 고향인 그녀는 평생 물질을 했고 지금도 한다. 이 집의 모든 메뉴는 직접 잡는 재료를 이용한다. 난전에서 영업하다 식당을 차린 지 오래되지 않았다. 욕지도에는 과거 물질을 왔다가 욕지도 총각에게 다리가 잡혀 몇 십 년째 못 떠나고 사는 제주 해녀들이 여럿 있다. 또 TV에 짬뽕으로 소개되어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는 한양식당(055-642-5146, 욕지면 동항리 790-9)이 있다.
○숙박정보 : 욕지도 일주도로 전역에 아름다운 펜션과 민박이 많이 있다.

- 글·사진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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