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라는 것은 생각에 따라 늘 그렇고 그런 모습이다. 미로 같은 골목마다 난전을 즐비하게 펼쳐 놓은, 촌로의 모습이 정겨운 곳. 강릉시의 중앙시장에는 강원도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옛 향기가 있었다. 강릉 전형적인 사투리는 물론이고 강원도식, 아니 강릉식 음식들, 농산물들이 옛 명맥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강릉의 오래전 전통이 살아 있는 시장의 모습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엇비슷한 재래시장 속에, 그 지역의 특색이 그대로 녹아있다는 것은 여행객들을 즐겁게 한다.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세월 속에서 그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을 만나기 쉽지 않다. 강릉의 중앙시장에는 그런 향기가 가득하다.

오래전 1920~40년대까지만 해도 강릉포교당과 남대천 제방 아래 우시장 사이의 한적한 논이었다. 당시 상권은 객사와 남대천 제방까지 일대에 형성되어 있었다. 긴 세월이 흐르고 흘러, 1980년, 강릉의 동부시장과 서부시장 다음으로 도심 상설시장으로 정착한 곳이 중앙시장이다.
어느 지역에나 한 두개는 있음 직한 도심시장일 뿐이라는 필자의 고정관념을 깨준 곳이다. 이 시장을 찾은 것은 삼숙어탕으로 유명하다는 해성식당을 찾기 위함이었다.
워낙 매스컴에 오랫동안 회자되는 집이라 일부러 찾아가게 된 것이다. 식당 건물은 참으로 낙후하고 허름하다. 연륜을 읽기보다는, 그 낡음에 맛의 믿음조차 사라지게 하는 듯하다. 거기에 뼈가 많은, 아귀 닮은 삼숙어가 그다지 맛있지도 않았다.
식사 후 단오 축제장을 향하게 된 것이 중앙시장과의 첫 만남이다. 도로변 옆으로 생선코너가 있고 골목마다 제각각의 특색을 가진 점포들이 이어진다. 닭강정 골목, 채소전 등등. 난전을 펼쳐 놓은 할머니들의 언어 속에 남아있는 진하디 진한 강원도 사투리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사진만 찍지 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냉냉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지만, 그것쯤이야 감안해야 한다. 난전을 펼친 채 짧은 낮잠에 취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다. 그날 장터에서는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막장’을 산 것뿐. 나중에 더 사올걸 하고 후회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중앙시장을 비껴 남대천 변으로 갔을 때는 실망했다. 출처 불분명한, 요즘식 천막좌대는 짜증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올 겨울 다시 중앙시장을 찾는다. 여전히 진입로는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중앙시장이라는 입간판을 따라 들어가면서 새롭게 발견한 곳은 먹자 골목이다. 한두사람이 어깨를 맞부닥치면서 걸어가야 할 정도의 미로. 그 양쪽으로 식당이 이어진다. 눈길을 부여 잡는 모습들이 많다.
우선 메밀전이다. 어릴적 전을 부칠 때면 기름을 아끼기 위해 무, 가지 등을 이용해서 아주 얄팍하게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부쳤었다. 그 모습 그대로다. 양념 뭍은 김치를 넣기도 하고 백김치를 넣기도 한다. 입구에 있는, 부치기가 바쁘게 팔리는 집에서 메밀전 세장에 2천원을 주고 산다.
수수전과 팥죽을 파는 집도 만난다. 집에서 직접 재료를 해왔다는 집. 다른 지역에서 먹은 것과 달리 팥이 달지 않아서 좋다. 그것도 산다. 팥죽을 먹고 있던 할머니는 자꾸만 앉아서 같이 먹기를 권한다. 정이 뚝뚝 떨어지는 할머니 행동이 감격스러울 정도다. 반찬을 즐비하게 만들어 내놓은 집, 1천원짜리 김밥집. 무뚝뚝하기 이를데 없지만 푸짐한 속 재료를 넣어 맛이 좋은 김밥이다. 마치 70년대로 시대가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중국의 개발되지 않은 나라를 방문한 듯한 착각이다. 먹거리도 문화다. 그 먹거리 문화 속에는 강원도 전통을 잇는 맥이 남아 있었다.
길을 되돌아 나와 다시 골목으로 들어간다. 추운 탓에 채소 난전은 많이 줄었고 대신 코다리, 양미리, 도루묵, 대구 등을 파는 상점들이 많이 눈에 띈다. 직접 말렸다는 아주머니 집에서 선물을 주려고 또 몇 보따리 구입한다. 가격도 속초시장보다는 싸다. 닭강정집도 맛이 좋고 무쇠솥을 걸어 놓고 소머리 국밥을 파는 아주머니의 정갈한 외모도 여전하다.
장터 구경에 충분히 만족하고 입구에 있는 보진당(강원도 문화재자료 제6호)을 간다. 조선 중기에 호조참의로 추증된 권사균이 세운 별당식 건물. 고종 4년(1867)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했다. 하지만 문은 늘 굳게 닫혀 있다. 이 별당의 세월을 읽게 해주는 것은 1000년이 넘은 수령 오래된 은행나무. 호행(虎杏, 강원도 기념물 제64호)이라 불린단다. 신라시대부터의 나무라는데 별당보다 훨씬 오래되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근처에 단오문화관이 있다. 강릉 단오제(중요무형문화재 13호)와 중앙시장은 밀접한 연계가 있다. 문화적 독창성과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다. 내국인보다도 외국인들이 더 관심을 갖게 된 국제적인 축제다.

■○위치 : 강릉시 성남동 50번지, 문의:033-648-2285, www.gncmarket.com
○찾아가는 길 : 강릉 IC→시내방면으로 직진→옥천오거리(홈플러스)에서 우회전→대한생명 사거리에서 우회전→공영주차장
○별미집 : 강릉쪽의 맛있는 식당으로는 농촌순두부(순두부, 청국장, 033-653-0811, 강릉시 강문동 126-1)가 맛있다. 초당두부거리에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강릉감자옹심이(감자옹심이, 감자떡, 033-648-0340, 강릉시 임당동 19-22)도 맛있다. 중앙시장의 해성식당(삼숙어탕, 033-648-4313, 성남동 50 중앙시장2층)이 유명하다. 안인항쪽으로 가면 열해(닭해물전골, 033-653-3060, 견소동 268-28)가 괜찮다. 그 외 미락(탕류, 033-652-4160, 견소동 161)과 강릉항 수산물회센터의 동호(6호점, 01-334-1607)에서 회를 즐기면 좋다. 오죽헌입구에 있는 꿈의 두부(033-645-6500, 강릉시 죽헌동 220)에서는 퓨전요리를 즐길 수 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1988년에 강릉에서 시작한 보헤미안(033-662-5365)을 찾으면 된다. 아포카토가 특히 맛있다.
○숙박 정보 : 경포대 주변에 모텔등이 여럿 있다. 좀 한갓진 곳은 송정해변 가는 길목의 모텔들을 이용하면 된다. 파라다이스모텔(033-653-0008, 강문동 308-2)이 친절하다.

- 글·사진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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