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중소기업 협동조합의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을 둘러싼 논쟁도 이와 비슷하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도급 모기업인 대기업과 협상할 때 개별기업의 힘으로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으니 조합이 그 기능을 대행해주면 그 이상 바랄 바가 없다.
대기업이 생산라인을 늘리라면 늘리고, 바꾸라면 바꾸고, 단가를 깎으라면 깎으면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하도급 중소기업으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원자재가가 아무리 올라도 납품단가를 올려달라는 말을 입 밖에 내기 어려운 하청기업들에게 복음 같은 얘기다.
한편 도급업체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중소기업 조합에 가격조정 협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적 계약의 자유를 크게 해치고, 결과적으로 경쟁 아닌 담합을 조장하는 반(反)시장적적인 조치라는 시각이다.
개별기업의 협상에 제3자가 끼어드는 것은 이론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현실적으로도 결코 작동하지 않는 탁상공론의 포퓰리즘적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더구나 합리적 수준에서 납품단가를 낮춰달라는 대기업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부득이 해외업체로 하도급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납품단가 조정협의권 中企에 절실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양시양비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 까닭은 하도급 거래관계의 부품시장은 원천적으로 수요독점(monopsony)시장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품의 수요자인 갑은 대기업 하나뿐이고, 공급 측인 을은 수많은 중소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양자 간에는 협상력에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 결과 기업 영업이익률에 현저한 격차가 발생한다.
통계이용이 가능한 2005년 자료를 보면 대기업이 7%, 중소기업은 그 반도 안 되는 3%선에 머물고 있다. 선진 여러 나라에 비해서 그 격차가 현저히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청 중소기업의 협상력 내지 길항력(佶抗力, countervailing power)을 보강해주는 것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정책의 큰 기둥이 돼야 마땅할 것이다.

부당 단가인하·발주취소 막아야
현실 거래관계에서 보면 도급업체로부터 부당한 단가인하, 부당한 발주취소, 부당한 반품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납품업체들이 거래관계의 단절을 우려해서 모기업의 부당한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는 현실을 계약자유의 원칙으로 눈감아서는 안 된다.
이러한 불리한 교섭력을 보강하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한 경우에만 적용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하도급법 개정안’이 조속히 본회의를 통과하길 기대하는 바이다.
하도급거래에 있어서 발주내용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정확히 지키는 것은 법률 이전의 문제가 아닐까. 을은 꼭 지켜야 하고, 갑은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는 계약체제라면 천민자본주의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신의성실의 원칙이 지켜지고, 상호신뢰가 축적되어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되며, 그 이익을 갑과 을이 함께 나눌 수 있어야 건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도 납기의 준수, 품질의 향상, 기술력의 보강, 거래선의 다변화를 위한 노력이 더 강화돼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중소기업의 협상력을 보강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함과 동시에, 중소기업 스스로의 체질개선과 자구노력이 더욱 요청된다고 하겠다.

최용호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사)산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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