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나이트라인’ 앵커와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낸 SBS 신우선 기자가 중소벤처신문 독자들에게 생생한 동남아시아 소식을 전합니다. 지난 7월부터 1년간의 연수를 위해 말레이시아에 체류중인 신우선 기자는 20년간 방송기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떠오르는 신흥시장인 ASEAN 지역의 경제 현장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주>

다리 하나만 넘으면 수도 콸라룸푸르에 이를 수 있는 말레이시아 암팡(AMPANG).
지난달 얻은 하숙방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10여동의 아파트가 둘러싼 한가운데에 수영장과 작은 매점이 있고 주변에는 돌과 나무와 풀밭이 어우러진 작지 않은 마당이 있다.
늦은 오후 매일 비가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서늘해진 마당에는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어 재잘거리며 논다. 처음엔 소음으로만 들리던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영어와 말레이어와 중국어와 한국어가 뒤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각자의 말을 쓰면서도 서로 의사소통이 제법 되면서 까르르 거리며 놀고 있는 장면이다.

인종·언어 상관없이 어울리는 아이들
결혼 20년에 직장생활 20년이 되는 올해 초 , 40대 후반으로 들어선 나는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재충전을 위한 스스로의 안식년. 그러나 나의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오직 휴식만을 위한 안식년은 무의미할 것이 틀림없으므로, 뭔가 할 일이 있는 곳을 택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졸업 후 한번도 써본 적이 없는 나의 전공이 생각났고, 다른 TV방송사와는 달리 SBS에는 동남아주재 특파원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러 대학 선후배동기들이 즐비한 인도네시아보다는 좀 더 생소한 말레이시아를 연수지로 정했다.
그러나 나를 지켜보는 주위의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정말 내 뜻을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회사 선배와 동료도 드물게 있었지만, 대다수는 걱정 반 의심 반이었다.
말레이시아는 물론 아세안(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몰이해도 나를 갸우뚱거리며 바라보는 눈길에 더욱 확신(?)을 주는 듯 했다.
그러나 내가 와서 본 이 나라와 아세안 국가들의 상황은 그런 의혹의 눈길을 빨리 깨줘야겠다는 기자 근성에 오히려 더 힘을 주었다.

우리보다 오히려 국제화 앞서
총인구 3억5천만명에 그 넓이와 그 많은 자원은? 소비시장은? 동남아에서 열심히 공장을 돌리며 살고있는 10만이 넘는 우리 교민들과 주재원들은? 주요 도시마다 백화점을 세우고 돈벌이에 열심인 일본 자본들은? 동남아 저변을 주름잡고 있는 화교 네트워크는? 그런 사실(FACT)들을 과연 우리가 무시해도 좋을 것일까?
우리는 IMF를 1등으로 졸업한 학생이지만, 말레이시아는 IMF의 권고를 완전무시하고 미국자본의 뒤흔들기를 자력으로 이겨내면서 우리가 고생하는 동안 오히려 연평균 7%가량의 고도성장을 이룬 나라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 국민들 일부는 아직도 생리대조차 살 수 없는 나라다.
한편 자녀교육에 열성인 일부 학부모들이 요즘 서서히 이곳으로 오고 있다. 아빠를 ‘기러기’로 만들고 여기 와 있는 이들이 이 아파트 단지에만 20여 가구가 있다고 한다.
한국의 서울대는 세계 200위권 밖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말레이시아에는 100위권 안에 드는 대학이 세 곳이나 있다. 올해도 한국학생이 이곳의 대학을 거쳐 최고의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에 갔다고 한다.
오늘도 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여러 인종의 아이들 속에서 한국아이의 얼굴이 보이고 한국말이 웃음 속에 뒤섞여있는 것을 들으며, 그 아이들이야말로 미래에 단단히 한몫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누가 시킨 일은 아니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에 스스로 용기를 더 불어넣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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