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땅을 처음 밟은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 당시 유일한 벗이었던 ‘짝꿍’의 외갓집이 의성이었다. 체력장 휴일을 얻어서 의성땅을 밟았다. 난생 처음으로 경상도 땅을 밟아본 것이다. 기차안에서는 사과를 파는 행상들이 지나쳤고 객실안은 어느새 질펀한 경상도 사투리로 범벅이 됐다. 그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어서 마치 이국에나 온 것처럼 경이로운 체험을 했다. 그 이후 최치원과 연계됐다는 고운사를 둘러보고는 이번이 세 번째다. 그저 주마간산격이어서 의성에 대한 자료는 전무한 상태나 다름없다.
중앙고속도를 타고 의성IC를 빠져 나와 곧추 탑산온천(054-833-5001)으로 향한다. 고속도로변에서도 건물이 보인다. 10년정도 됐다는 온천은 낙후됐지만 노천탕까지 구색을 맞춰 놓은 것을 보면 시대적으로는 앞서가고 있다. 무명산에서 발견된 게르마늄 온천. 새롭게 온천단지를 조성한다고 하니 머지 않아 관광단지로 부상할 듯하다. 온천 앞으로 흐르는 계곡에서는 그리 맑아 보이지 않는 물인데도낚시도 하고 천렵도 한다.
이어 빙계계곡을 찾아 나선다. 날씨는 꾸물꾸물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하다. 삼한시대 진한의 12읍제 국가의 하나였던 조문국의 무덤인 경덕왕릉(본면 대리리)을 지나치게 된다.
잠시 둘러보니 마을에는 온통 사과밭이며 홍화꽃이 지천으로 만발했다. 가을 즈음에 찾아오면 풍요로움이 넘쳐날 듯하다. 이 지역이 홍화단지냐고 지나가는 아낙에게 물어보았다. 한때는 많이 재배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재배면적이 현격하게 줄었단다. 그래도 홍화꽃은 탐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탑리 삼층석탑을 둘러보고 이내 빙계계곡을 찾아나선다. 빙계계곡에는 빙혈과 풍혈이 있어 삼복에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에 더운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곳이다. 이곳은 경북 8승지의 하나다.
빙계 8경이란 계곡 주변의 빙혈, 풍혈, 인암, 의각, 물레방아, 석탑, 불정, 용적 등 여덟 개의 절경을 이른다. 도로변에는 울창한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준다. 계곡에는 커다란 검은 바위가 듬성듬성 멋지게 들어 앉았다. 물빛은 맑지가 않다. 거의 시궁창 물빛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위쪽에는 다리공사가 한창이어서 진흙물이 합쳐졌기 때문. 그 와중에 계곡에는 다슬기를 잡는 사람도 눈에 띈다. 뙤약볕보다는 흐린 날에 다슬기가 더 많이 기어나온다는 상식을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도로변 옆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바위는 구멍을 냈다. 그 구멍속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품어 내고 있다. 이곳이 바로 풍혈이다. 이런 풍혈은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빙혈이라는 석조 팻말을 따라 올라가보니 조성해 놓은 듯한 잔디밭이 나온다. 이곳이 옛 빙산사지. 바로 그곳에는 5층석탑이 있다. 신라말 건축된 것으로 보물 제 327호다. 의성땅에는 흔하게도 삼층 석탑이 흩어져 있다. 탑을 지나치니 바로 ‘빙혈’이 있다. 새로 고친 듯 대리석으로 석굴을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마치 얼음창고에 들어선 듯 시원해진다. 예전에는 이곳에 얼음이 얼었다고 한다. 개조하고 나서는 얼음을 볼 수 없게 됐단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얼음조각을 갖다 놓는다고 하니 안타까운 심정을 어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자연을 벗하면서 느끼는 것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만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얼음이 얼 정도로 차갑게 느껴진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풍혈이다. 조금만 있어도 금새 온몸이 차가워진다.
빙산사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단군 영정을 모신 태일전이 있던 곳이며 불정산 꼭대기의 쇠스랑 자국 모양(불정)과 개울 옆 절벽 아래의 소는 그 옛날 용과 장수가 힘겨루기 해 생긴 흔적이라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이곳을 내려와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면 이내 민가가 나오고 길 안쪽에도 마을이 있다. 차라리 마을이 없다면 빙계계곡 자체만으로는 신령스러운 곳이다. 한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계곡은 더 신비스러워졌다. 그 속에서 소리없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 지역의 취사행위는 전면 금지돼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빙계온천(054-833-6660)이 있다. 개장한지 오래되지 않아 욕장이 깨끗하고 무엇보다 산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공기가 맑다. 온천수가 옥색의 빛깔을 띠고 있다는 게 특징. 리튬이 많이 함유돼 있어 신경통과 피부병 등 만성질환에 탁월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부대시설로 넓은 노천탕과 핀란드식 사우나, 황토 찜질방 등을 갖추고 있다. 계곡과 온천을 연계하면 참 좋을 코스다. 비 탓으로 완벽한 취재는 못하고 또 다음을 기약해야 했던 곳. 의성땅은 그렇게 필자를 붙잡고 있었다.
■대중교통 : 의성읍에서 가음면 현리행 완행버스 이용. 1일 2회 운행, 40분소요
■자가운전 : 중앙고속도로~의성IC~5번 국도 이용하다가 917번 지방도로 우회전~경덕왕릉을 거쳐 나오면 28번 국도와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탑리를 거쳐 춘산, 현서 방면으로 난 68지방도 이용~가음면소재지~춘산방면(0.6km)~빙계계곡입구 표지판으로 좌회전~빙계계곡~곧추 직진하면 빙계온천
■별미집·숙박 : 빙계계곡 주변으로는 음식점이 많지 않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집은 ‘시집못간 암탉’(054-832-2402)집. 여주인의 손끝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꽃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주변을 꾸며 놓았다. 취미삼아 글쓰기를 한다는 여주인. TV에 소개되고서는 더 많은 부담이 따른다면서도 일일이 찾아오는 손님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다. 직접 닭을 잡아서 만드는 토종닭 요리가 주 메뉴. 채마밭에서 기르는 야채와 직접 담은 된장 맛이 괜찮다. 김치 맛 또한 감칠맛이 느껴진다. 민박도 할 수 있다. 탑산온천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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