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성(중소기업연구원연구위원)

납품단가 인하 규제가 필요한 까닭

지난 15일 부당 납품단가 인하행위에 대한 실태조사가 발표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숫자이다. 3.4%와 23.9%. 전자는 서면조사에서 부당 단가인하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고 후자는 현장조사에서 부당 단가 인하를 파악한 결과이다. 무려 7배 이상 차이가 나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다. 응답자의 다수는 대기업과의 거래 단절 등을 우려하며 조사 내용에 대한 보안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는 눈에 보이는 수치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 사이에 간극이 크며 진실이 은폐돼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5월말 국회를 통과한 하도급법 개정안의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필요한 것은 모든 피해자들이 피해 구제를 신청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이든 발생한 피해에 대해 피해자들이 충분히 구제를 신청하지 않는다면, 불법행위로 인해 행위자가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익은 행위자가 부담해야 하는 손실을 능가한다. 이는 행위자의 불법행위를 조장할 수 있는 유인이므로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은 실질적 부담의 부과가 필요하다.
피해액의 3배라는 수준이 과도한가 과소한가는 이 법 시행에 따른 불법 행위의 억제력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실제 피해액과 행위자의 부담 간의 균형을 통해 판명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 누구도 불공정한 하도급 관계에서 무모하게 원사업자를 고발하고 나서기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6월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이 부여됐으나 이후 올해 법 개정까지 이 제도를 이용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실을 웅변한다.
그럼에도 모 경제단체의 SNS에는 “과도한 기업규제와 납품단가 인하의 어려움, …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기업들이 과연 잘 할 수 있을까요”라는 호소(?)가 등장하고 시장만능주의자의 시각을 빌어 납품단가 인하 규제는 거래 당사자 간 계약 자유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는 불평이 그치지 않는다.
과연 과도한 규제일까? 하도급 관계의 불공정은 사업환경 변화와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원사업자가 지속적인 경영합리화를 추구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이들이 과점을 형성하고 있고 하도급 업체가 이들에 비해 훨씬 많을 때 ‘힘의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힘의 불균형은 원사업자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원사업자는 적절한 규제가 없다면 단기적 이익 극대화를 위해 권력을 남용할 유인을 갖는다.
납품단가 인하 규제가 과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하도급업자에 대한 원사업자의 권력을 규제하는 것에 대한 불만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권력을 유지시키는 것이 옳은가?
1990년대 초 GM과 혼다의 사례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당시 GM은 경쟁력의 원천을 가격경쟁력에 두고 협상 불가능한 납품 단가 인하를 하도급업체에게 강요했고 기술을 강조한 혼다는 관계지향적 접근을 취해 공동제품 개발, 단가 인하에 따른 이익 공유를 추구했다.
그 결과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싸구려 차의 이미지로 전락한 미국 자동차업체의 경쟁력 상실과 고장 없는 차로 알려진 일본 자동차업체의 시장 지배이다.
원사업자가 행사하는 권력은 이처럼 한 국가, 한 지역의 산업을 융성하게 만들 수도 있고 쇠퇴를 촉진할 수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이들의 권력 행사가 견제돼야 하고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납품단가 인하 규제의 사회적 정당성이 부여되는 이유이다.

박재성(중소기업연구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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