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A사는 최근 대기업 B사의 경쟁입찰에 참여해 낙찰을 받았다. 그런데 B사 구매부서에서 전화가 날아들었다. 낙찰가보다 낮은 하도급 금액을 요구한 것이다. 고의로 유찰을 해버리거나 최저가를 써낸 경쟁사 가격을 넌지시 알려줘 저가 낙찰을 유도하기도 했다며 A사는 볼멘소리를 냈다.
대기업 D사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C사 대표는 구매담당자에게서 ‘원가절감 목표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며 단가를 깎으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인사이동으로 구매담당자가 새로 오면서 압력이 더 심해졌다. 수시로 5% 단가인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담당자가 바뀌면 실적을 위해 단가인하 요구가 거세지는 셈이다.
중소업체 G사는 대기업 H사와 거래하면서 계약서에 ‘물가상승에 따른 납품원가 반영을 해줄 수 없다’는 부당특약을 맺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경기가 어렵다며 연 3회, 평균 7%의 단가 인하를 요구받기도 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다수 정부 포상을 받은 유망 중소기업 I사는 대기업 J사의 부당한 단가 인하로 심각한 경영압박 상태에 놓였다. 대기업은 프로젝트를 따내면 적정이익을 떼어놓고 중소기업과 단가협상에 임하지만, 중소업체는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잇따라 국회에서 통과되는 등 경제민주화를 위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지만 중소기업 현장에서의 체감도는 아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가 여전한 것으로 조사돼 법 통과 이후 시행과정에서 정부의 지속적인 감시와 대기업의 자세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부당 납품단가 인하행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95개 대기업·공기업의 협력사 총 5167개사를 대상으로 현장 및 서면조사를 한 결과 359개사(6.9%)가 부당 납품단가 인하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현장 심층조사에서는 902개사 중 216개사(23.9%)가 부당 납품단가 인하를 강요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부는 중소기업청, 동반성장위원회 등 관련기관·부처와 함께 지난 5월 초부터 대기업(74개) 및 공기업(21개) 협력사인 총 6430개 업체를 대상으로 납품단가 인하와 관련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조사응답율은 80.4%였다.
이번 조사에서 주목되는 점은 현장 심층조사에서 부당 납품단가 인하를 강요받았다고 대답한 중소기업의 비율.
관련 공무원이 업체를 직접 방문, 심층조사를 벌인 902개사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216개사(23.9%)가 대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에 비해 서면조사를 한 4265개사중 같은 응답을 한 업체는 143개사(3.4%)에 불과했다.
납품단가 인하 유형으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 비율로 깎는 경우’가 56.8%로 가장 많았고 ‘경쟁입찰 때 낙찰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결제’(28.4%), ‘경제상황 변동 등 협조요청 명목’(25.1%), ‘생산성 향상·공정개선 등 사유로 감액’(22.0%) 순으로 나타났다.
모기업 차원에서 강압적 조사를 통해 인하를 종용한 사례, 많은 물량을 발주할 것처럼 속여 단가를 인하한 경우, 꼬투리를 잡아 감액하는 사례 등도 지적됐다.
단가 인하율은 5% 이하가 74.9%로 대부분이었지만 10% 이하도 25.1%나 됐다.
업종별로는 통신(12.0%) 업종의 단가 후려치기가 가장 심했고 정보(10.2%), 전기·전자(9.8%), 기계(8.8%) 순으로 나타났다.
산업부는 이번 기업별 조사결과를 장관 친서 형태로 해당 기업에 통보하고 내년도 동반성장 지수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또 ▲공급능력이 부족한 업체를 끼워 넣어 입찰가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수법 ▲서면계약 없이 단가인하·지급지연·판매수수료 및 판촉비 전가 등을 하는 사례 ▲부당 특약사항 반영과 고의 유찰 감행 사례 등 불공정거래 행위가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청 등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