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소송을 둘러싸고 중소기업과 은행이 18일 대법원 공개변론장에서 격돌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많은 수출 중소기업들을 울렸던 키코가 불공정한 계약인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날 변론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키코 소송건 가운데 수산중공업, 모나미, 세신정밀 등 3곳이 우리·씨티·신한·SC은행 등 4곳을 상대로 낸 소송에 관해 이뤄졌다.
수백 개의 중소기업이 키코로 인해 경영위기를 맞고 있는 사건인 만큼 이날 대법원 대법정에는 소송관계자는 물론 수많은 중소기업 관계자 등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한 범위에서 움직이면 미리 약정한 환율에 외환을 팔 수 있지만 지정된 상한선을 넘으면 계약 금액의 2~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팔아야 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만기 환율이 약정환율보다 낮으면 기업이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약정환율보다 높으면 손실을 보게 되는 구조다.
외환위기 이전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대거 가입했지만 금융위기로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이후 기업들이 계약 체결 당시 위험성을 알았는지, 지나치게 불공정한 계약이어서 무효라고 볼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수많은 소송전이 진행 중에 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키코 계약으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수산중공업과 모나미, 세신정밀 등 원고 측 대리인은 키코 상품의 위험성과 불공정성을 강조하며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김성묵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은행이 환율이 오르면 큰 손해가 발생한다는 위험을 숨기고 수수료가 없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며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미국 연방증권거래위원회 전문가들도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으면 사기죄로 처벌했을 것”이라며 불공정계약이 명확하다고 재차 주장했다.
원고 측 참고인으로 나선 김용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키코는 사실상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는 금융당국과 기타 정부부처가 해결노력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며 “외국에서는 해당 은행들은 처벌대상이 됐을 것인데 우리나라만 소송전을 치르는 것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역시 원고 측 대리인으로 나선 김용직 KCL 변호사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재앙적 손실을 본 반면에 은행은 거액의 이익을 챙겼다”며 “금융인 중에서도 키코가 불완전 매매됐다고 시인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은행도 인정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에 은행 측 대리를 맡은 백창훈 김앤장 변호사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백 변호사는 “기업들이 키코 상품의 구조를 모두 알고도 투기적 거래를 했다”며 이익을 볼 때는 가만있다가 손실을 보자 피해까지 보상해달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변론했다.
한편 피해 기업 측은 대법원이 이번 소송에서 은행의 손을 들어줄 경우 ‘제2의 키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판례가 남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은 상고심 판결이 현재 진행 중인 200건이 넘는 1, 2심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대법관 전원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론을 낸 뒤 판결 기일을 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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