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윤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1966년 중소기업기본법이 제정됐다. 이전에는 중소기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중소기업기본법에 의해 중소기업의 범위와 역할이 정립된 것이다.
당시 중소기업 정책은 산업화와 궤를 같이했다. 산업화의 핵심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중화학공업과 수출이다. 중화학공업의 특징은 여러 개의 부품이 모여 최종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산업화는 중소기업은 부품 생산에 주력하고, 대기업은 최종재를 생산해 수출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계열화라 부른다.
1980년대 중소기업 정책의 패러다임은 보호와 육성이다. 당시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컸다. 정의사회 구현을 내세운 전두환 정권은 이러한 격차를 없애고자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이라는 큰 틀을 만들었다. 비록 1990년대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개방 환경 속에서 보호와 육성은 여전히 중소기업 정책의 근간이었다.
2000년대 중소기업 정책의 패러다임은 자율과 경쟁이다. 당시 한국경제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IT와 벤처를 통해 위기에서 탈출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은 소상공인 중심의 ‘생활형 기업’ 형태에서 IT와 벤처 중심의 ‘생산형 기업’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 맞게 중소기업 정책도 보호와 육성에서 자율과 경쟁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했다.

확고한 정책 패러다임 자리매김을
IT와 벤처기업은 창업에서 성장까지 기업환경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율과 경쟁이라는 패러다임이 필요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통상 정책은 자율과 경쟁에 힘을 실어 줬다.
불행하게도 자율과 경쟁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우리 사회와 경제가 자율과 경쟁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자율과 경쟁의 목표는 중소기업 간의 건전한 경쟁을 통해 중소기업의 발전을 꾀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경쟁이 심화했다. 게다가 소득수준 향상과 소비자 기호의 다변화는 대기업의 사업 범위 확대를 유인했다. 골목에서조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대기업은 경쟁에서 승리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실을 시장실패로 받아들였다. 시장실패를 조정하기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불가피해졌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없애고자 노력했다.

국가경제의 성장 저변 확충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과거의 보호와 육성, 자율과 경쟁과 같은 중소기업 정책의 패러다임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경제민주화는 중소기업 정책이라기보다는 불평등과 격차 해소를 위한 우리 사회의 과제였다. 정부의 시장개입 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법제화하느냐, 지금처럼 민간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예가 될 수 있다.
증가하는 복지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 이는 성장이라는 보수적인 정책으로 복지라는 진보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적 선택은 성장을 통해 복지(분배)를 달성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단순한 불균형 해소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는 대·중소기업의 격차 해소 또는 중소기업 보호가 아니라 중소기업의 성장을 통해 국가경제의 성장 저변을 두텁게 하는 것이다. 0.1%에 불과한 대기업 중심의 성장에서 99.9%의 중소기업이 성장에 참여하는 전략이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경제활성화는 경제활성화를 통한 경제민주화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정책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통한 경제활성화의 효과와 지속성은 훨씬 더 크다. 이것이 경제민주화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다.

오동윤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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