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 그리고 직원들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인간애 등이 아닐까. 이 모든 것을 갖춘, 마치 기업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CEO가 있다. 일본의 악기회사 후지겐의 창업자, 요코우치 유이치로가 주인공이다.
1947년, 20살의 요코우치는 농지몰수를 피하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가업인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학업에 대한 미련이 크다보니 농사일이 재미없었고, 어떻게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일본에서 최고 매출을 올리는 영농인이 되겠다’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축산, 원예 등 손대는 것마다 성공하며 일본 최고 매출 농업인의 꿈을 이뤘다.
32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요코우치는 동경대 농학부에서 열리는 한 교수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농업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거니 기대하고 간 자리에서 그는 “앞으로는 공업이 중요하니 젊은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말고 도시에 가서 일하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영농인의 한 사람으로 화가 치미는 와중에서도 그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바로 ‘도전’이라는 이름의 에너지였다. 결국 그는 농사를 그만두기로 하고, 공업의 길을 선택한다. 우연히 방에 놓여 있던 기타를 보고는 악기에 관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1960년 친구에게 소개 받은 사업가 미무라 유타카를 만나, 100만엔의 자본금으로 클래식 기타 회사를 설립하고 미무라가 사장을, 요코우치가 전무직을 맡으며 후지겐의 역사가 시작됐다. 직원들과 밤낮 땀을 흘려가며 만들어진 기타 시제품을 들고 요코우치는 직접 악기 판매점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뛰기 시작했는 기타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주문이 늘어났고, 후지겐은 성장해 나갔다.
갖은 역경과 행운 속에 미국시장 진출에도 성공, 전 세계 45개국에 사무소가 세워지고 일본 최고 기타 회사로 자리매김한 후지겐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1960년대 후반, 엔화가 급등하면서 수출이 크게 타격을 입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무리한 사업확장이 실패한 것이다. 전무이사였던 요코우치는 1969년 직접 사장직에 취임해 직원 한 사람도 감원하지 않고 회사를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요코우치는 먼저 ‘세계 최고의 기타를 만들자’라는 기업 미션을 수립했다. 그리고 제품이 최고가 되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최고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대규모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전 직원의 급여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인상했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경영 악화로 불안해하던 직원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졌고, 후지겐을 불과 1년 만에 적자를 흑자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이 일로 요코우치는 기업의 책임감과 기업문화에 대해 절감하게 됐다.
쾌적한 공장 환경 조성, 직원 복지를 위한 후생관 건립, 단 한 명의 인원감축도 없는 평생직장 공표 등 인간 중심 경영을 펼쳤다. 회사를 도산 위기에서 살려내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은 직원들의 능력과 애사심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요코우치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 만들기입니다. 이 공장은 사람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훌륭한 사람을 만들고, 그 훌륭한 사람들이 기타를 만드는 겁니다.”

안신현(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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