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현장르포]“南과 北 장점 살려 개성에서 꽃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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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현장르포]“南과 北 장점 살려 개성에서 꽃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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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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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국회의원 등 남측대표 220여명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를 출발, 북한 개성공단 예정지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날 함께 참가했던 이낙연 민주당의원은 6시간50분간 겪었던 북한방문경험을 글로 기록, 본지에 보내왔다. 일간지 기자 출신답게 날카롭고 사실성 넘치는 필치가 개성공단 현장분위기를 더욱 생동감 넘치게 해주고 있다. 이낙연 의원 현장방문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북에 다녀왔다. 난생 처음이었다. 1980년대에 판문점 북측 지역에 드나들었고, 1990년대에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가본 것을 빼고는 처음으로 북녘 땅을 밟았다.
8월25일 오전 7시40분. 우리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출발했다.
이내 서울을 벗어났다. 시원하게 뚫린 4차선 도로. 포장이 산뜻하고, 가로등도 세련됐다. 버스는 막힘없이 달렸다. 예정보다 10분 빨리 남측 출입관리사무소(CIQ)에 닿았다. 남북을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검문소다. 조금 떨어진 왼쪽에 도라산 역사가 날렵하게 서 있다. 도라산역을 통해 경의선 철도가 북으로 뻗어 있다.

출입절차 30분만에 끝나
출입절차는 간단했다. 북한방문증에 법무부 직원의 도장을 받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뿐. 220여명이 출입절차를 마치는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분단 반세기. 우리가 넘을 생각조차 못했던 금단의 경계선. 그것을 이렇게 간단히 넘게 됐다. 천지개벽이다. 이런 천지개벽을 우리 세대가 이뤄냈다.
CIQ부터 MDL(남북군사분계선)까지 2km의 4차선은 포장이 한창이었다.
CIQ부터 MDL까지는 남측 병사들이 지프 1대에 타고 버스 대열의 맨 앞을 달리며 우리를 안내했다. 그러나 MDL부터는 북측 지프로 바뀌었다. 민간인 출입통제 지역을 벗어나자 북측 병사가 우리들의 버스에 올라 인원을 점검했다. 인원확인이 끝나자 우리를 북쪽으로 안내했다.
북측 4차선 도로는 포장을 기다리는 상태였다. 자갈이 편편하게 깔려 있었다. 자재와 장비는 남측이, 인력은 북측이 댄다고 했다.
현대아산 직원 수십명이 개성에 머물면서 간간이 이곳에서 북한 병사들에게 기술을 가르친다고 했다.
길 옆에는 키 낮은 코스모스가 심어져 있었다. 북측 병사들이 심은 것이란다.
MDL에서 5km. 북측 CIQ에 도달했다. CIQ라 하지만 아무 것도 없다. 길 위에 10여명이 도열해 있다. 평양에서 나온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부회장 황창길씨를 비롯해 군인, 세관원 검역원 등이 일렬로 서서 우리를 맞았다. 환영 겸 검문이다.
출입절차는 북쪽에서도 간단했다. 우리 일행은 각자 서명한 북측 출입신고서를 냈다. 북측은 우리 일행의 사진이 붙은 인적 사항 자료를 보면서 동일인 여부만 확인하고 한 사람씩 통과시켰다.
공기가 맑다. 개성의 뒷산 송악산과 그 옆의 화장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주변의 야산들은 모두 민둥산이다. 이곳저곳이 뻘건 맨살이다. 푸른 곳도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밭에는 옥수수, 콩, 메밀, 수수가 초가을의 따가운 햇볕을 힘겹게 견디고 있다. 옥수수는 키 작은 재래종. 한 그루에 열매가 한두 개 밖에 안 붙었다. 조금 떨어진 논에는 벼 이삭이 고개를 내밀었다. 논이나 밭은 모래땅이다. 농사가 제대로 될 것인가.
이곳저곳에 북한 남자들이 20~30명씩 몰려 있었다. 대부분이 군인 같다. 길 옆이나 길에서 조금 떨어진 철로 공사장, 산 중턱의 막사 주변에도 남자들이 모여 일하고 있었다. 장비다운 장비는 없다. 겨우 삽이나 괭이를 들고 있는 것 같다. 작업이 진행되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다.
남자들의 몸집이 작다. 서울로 치면 중학생 정도의 체격일까. 산 중턱의 군인 막사는 몹시 낡았다. 벽은 헐고 지붕은 해어졌다. 지붕에 누더기를 덮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슴이 아려 온다.
CIQ에서 조금 걷자 개성공단 예정지에 닿았다. 오전 10시50분. 길옆 언덕에서 임시 브리핑이 시작됐다. 현대아산 직원의 설명과 김윤규 사장의 인사. 갑자기 세상을 뜬 정몽헌 회장이 그토록 신임했던 김사장은 대북 경제협력 사업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일행에게 감동을 주었다.

서울서 60㎞거리
서울에서 불과 60km. 통역이 필요 없고, 월 65달러(기준임금 50달러, 사회보험료 30%)의 저임금. 현대가 2000만평(공장구역 800만평, 생활구역 1000만평, 상업구역 50만평, 관광구역 150만평)을 개발, 50년 동안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남북간 합의. 개성공단의 매력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확신이 없어 보인다. 북측보다도 남측이 더 그러는 것 같다. 이미 우리 중소기업 900여개(목표는 2000여개)가 개성공단 입주 의향서를 냈다. 6월30일 현지에서 착공식도 했다. 그래도 개성공단 예정지에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접근 도로와 철로가 만들어지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공단의 지반을 조성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전기와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도 갖춰야 한다. 아무래도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측의 기대는 컸다. 오전 11시 40분 우리가 다시 탄 버스에 동승한 황창길 북한 민경련 부회장은 “6·15 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민족의 공동이익을 위해 협력하자”며 “적극적 기여를 해 달라”고 우리에게 호소했다.
개성 시내 선죽교를 안내한 북측 관광안내원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첫째는 통일, 둘째는 공단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길 옆으로는 주민들이 오간다. 자전거를 탄 사람도 꽤 있지만, 대부분은 걷는다. 그들이 갖고 다니는 삽의 날은 거의 절반이 닳아 없어졌다. 길 양편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에서 쉬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연신 손을 흔들었다. 반응이 온다.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 대꾸한다. 손만 흔드는 게 아니다. 웃음으로 우리에게 답례한다. 우리들의 버스에 ‘개성공업지구 중소기업 방문단’이라는 한글 현수막이 붙어 있으므로, 우리가 남쪽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담장이나 어른 뒤로 숨는 아이들의 수줍은 웃음, 얼굴에 살이 없어 주름이 더 많아 보이는 여인들의 미소, 가슴이 저려 온다.
그래도 남자들은 반응이 거의 없다. 어쩌다 손을 흔들어도 얼굴이 무겁다. 무표정하다.
개성 시내에 들어갔다. 시가지는 피폐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회색 건물들. 벽에는 금이 가고, 유리창도 깨어진 곳이 많다. 어떤 건물은 깨어진 유리창을 종이상자 같은 것으로 막았다. 남쪽에서 들어간 쌀 포대로 창을 막은 곳도 있다.
5층 짜리 아파트도 매우 낡았다. 그을린 것처럼 어두운 시멘트 외벽. 벽이 갈라지거나 창이 깨진 곳이 많다. 연탄을 때는지, 검은 구공탄이 보이기도 한다. 아파트 창으로 우리들 일행을 내다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우리는 자남산 려관에서 점심을 했다. 전깃불이 켜져 있다. 현대아산 간부들이 지난번에 왔을 때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고 했다. 음식비용은 남쪽 주최측이 미리 보냈다. 한 사람당 우리 돈 4만원 꼴이라고 했다. 비싼 편이다. 북한이 그만큼 돈을 알게 됐다는 얘기도 된다.
김영수회장, 북측 황창길 부회장, 김윤규사장이 차례로 인사말을 했다. 김영수회장은 개성공단 기반시설 건설에 대한 남측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황창길부회장은 6·15 남북 공동선언을 다시 거론하며 “협력을 더 많이, 더 빨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규사장은 “남과 북의 장점을 살리자”며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개성에서 세계로 보여주자”고 역설했다.

북한도 많이 달라졌다
봉학맥주와 령통술(소주), 각종 나물, 오이소박이, 여러 가지 떡, 기름에 튀긴 한식 과자, 꿀에 잰 인삼, 새우튀김, 칠면조 고기, 닭에 쌀을 넣고 바짝 익힌 요리, 민물장어 구이. 대체로 조금 짜고 느끼하다.
과일로는 능금과 배가 나왔다. 능금도 배도 갓난 아이 주먹만하다. 크기도 맛도 개량하지 못한 것 같다. 아까 밭에서 본 옥수수도 그랬다. 산이 헐벗고 땅도 모래여서 농사가 신통치 못할 텐데, 종자마저 개량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남산 려관 매대(매점)는 우리에게 기념품을 팔려고 열심이었다. 달러와 유로화가 통용된다. 지난번 현대아산 방문 때는 우리 원화도 사용됐으나 나중에 북측 내부에서 시비가 생겨 그만 뒀다고 한다.
오후 3시 10분. 우리는 고려박물관 구경을 끝으로 북한 체류 일정을 마치고 남행을 시작했다. 오후 3시 40분부터 4시10분까지 북측 CIQ 절차를 마쳤다. 오후 4시 30분에는 MDL을 통과했다. 우리가 북녘 땅에 있었던 것은 오전 9시4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6시간 50분이었다.
6시간 50분 동안 우리는 자전거 이외의 대중교통수단이나 수송수단을 보지 못했다. 평양에서 내려온 고위인사들을 태운 승용차와 군용 차량을 봤을 뿐이다. 우리가 떠나면 승용차와 대부분의 군용 차량도 떠날 것이다.
6시간 50분의 북한 방문.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북한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피폐한 북한 경제에 희망은 있는가. 북녘 동포들을 저렇게 놔두고 남녘만의 풍요를 추구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가. 아니 가능한 일인가.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러나 나는 북한에서 긍정적 징후도 적지 않게 목격했다. 1980년대에 내가 동아일보 기자로서 판문점에 취재하러 다니며 북측 인사들을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80년대 긴장감 전혀 없어
첫째, 북한에 머문 6시간 50분 동안 우리는 긴장하지 않아도 됐다. 미리 정해진 코스대로 다니고 말에 조금 신경을 썼을 뿐, 제약은 거의 없었다. 북측이 참배나 서명을 요구하는 등의 일도 없었다.
둘째, 북측 인사들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 약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 일행 중에는 북한 경제의 낙후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예전 같으면 북측 인사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화를 내거나 반박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북측 인사들은 화를 내지도,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대개는 못 들은 척 했다. 그러다가 단둘이 있을 때면 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시인하기도 했다.
셋째, 북한체제 자체가 확실히 돈에 눈을 뜬 것으로 감지됐다. 자남산 려관과 고려박물관 매점은 우리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세심하게 노력했다. 자남산 려관 앞 길에 천막을 친 노점도 만들어 놓고 우리를 기다렸다. 매점에 내놓은 술, 담배, 우황청심환, 그림, 지도 가운데는 평양에서 급히 보내진 것도 있다고 들었다.
남측 CIQ절차를 마치고 서울 여의도에 돌아온 것은 오후 6시였다.
여야 국회의원 6명은 김영수회장, 김윤규사장과 함께 마포의 평양냉면집에 가서 수육과 냉면을 먹었다. 우리는 개성공단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김회장과 김사장은 열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주문한 수육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북녘 동포들의 힘겨운 얼굴이 떠올랐다. 명치끝이 아파왔다.

이 낙 연 (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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